<시리즈> 매킨토시 신화 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3)

특수한 재능을 가진 정신박약자처럼 뛰어나게 똑똑한 컴퓨터 과학자는 어느 한가지 분야에서는 탁월할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약할수도 있다. PARC의 연구진은 새로운 컴퓨터시스템을 개발하는 재능은 가지고있었지만 연구실에서 개발한 발명품을 상점에 내놓을 제품으로 바꿔놓는 데는 적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잠재적 소비자들을 위해 컴퓨터를 개발한 것이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PARC의 "우리가 만든 것을 사용합시다"라는 표어는 연구소가 개발해낸 기술 을 즉각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시험한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에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험은 일반사용자들보다는 컴퓨터 전문가들의 손에서만이루어지고 있었다.

PARC의 알토를 사용한 유일한 외부 사용자들은 제록스사의 다른 부서였다.

이들 부서는 각 부서 업무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의 컴퓨터를 주문했는데 가격은 1만2천~2만달러선이었다. 만일 알토를 일반에 판매해서 이익을 남기려면 대당 4만달러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었다. 포춘지 선정 5백대 기업으로 뽑힐 정도로 재정이 든든해서 자사제품을 "사들이는" 그런 회사보다 일반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가격수준을 뛰어넘으려면 제록스사의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들과의 공동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PARC의 연구요원들은 자신들의 혁신적인 발명을 상품 화하려고 제록스 본사와 협의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PARC연구요원들의 오만함이 "창조신화"에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제록스의 다른 직원들은 PARC에서 일할 만큼 두뇌가 명석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겸손 해야 할 때와 기술적으로 무지하다고 하여 PARC연구원들이 뒤에서 자기들을비웃는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머리는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PARC가 제품 화 가능성이 있는 것을 상품화하기 위해 제록스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때 차가운 반응을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조신화에서 우리가 그토록 많이 들었던 사악한 모회사 제록스가 좀더 진보 적이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보자. 가령 제록스가 PARC에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더이상 너희를 뒷받침해주지 않겠다. 여기 지금까지 네게 쏟아부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있다. 이 돈을 갖고 떨어져 나가라.

이제는 혼자 서서 너희가 개발한 제품을 직접 판매해 보아라. 서든 쓰러지든 혼자 힘으로 해보는거야. 이 새회사에 대해 우리지분은 계속 유지시키겠다" 그랬다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멍청한 부모에게서 해방된 PARC가 과연 PC회사로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을까.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PARC의 알토는 일반 대중 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PARC의 환경은 소비자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연구문화였다. 연구원들은 마치 대학에서처럼 자신의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선택했다. PARC에서는 이런 것을 "톰소여의 모험"이라 불렀는데, 누군가가 어떤 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 다른 연구원들이 그에 관심을 갖게 되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은 함께 울타리를 하얗게 칠하는 것을 돕곤 하는 식이었다.

PARC에서 각자가 주관하여 얻어진 전문기술지식은 이상적인 연구환경속에서 더욱 축적되고 발전되어 마케팅, 재정, 마케팅, 생산, 그리고 또 마케팅과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과 연결되어야만 했다. 연구요원들은 경비의 제약 을 전혀 받지 않고 엄청나게 비싼 하드웨어를 남보다 5~10년 앞서 사용할 수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겪어야하는 가격의 제약은 감안했어야 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예산상의 제약이 없었던 PARC에서 연구 원들에게는 상상력의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PC의 기억 용량을 최대한 활용할 소프트웨어를 설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전설적 인 알토의 주기억용량은 오늘날 PC의 표준용량인 수백만 바이트 또는 메가바이트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에 불과한 12만8천 바이트밖에 되지 못했으며 설 계상의 한계로 추가기억용량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되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PARC를 떠난 몇몇 연구원들은 직접 컴퓨터 유관 사업을 시작하여 상당규모의 기업을 세우면서 성공했지만 대중적인 제품보다 는 전문적인 제품을 취급했다. 가장 성공한 업체로는 3컴과 아도브 시스템사가 있는데 가족중에 컴퓨터 네트워크나 레이저 프린터 폰트 소프트웨어 등을 잘 아는 컴퓨터 전문가가 있지 않는 이상 이들 회사제품은 일반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PARC연구원 출신들은 비전문가들에게 자신들을 이해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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