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이테크산업 세계화전략(정보망과 주식시장)

증권 거래소는 본드에 대한 규칙을 자유화하여 이 사업을 끌어들일 수 있는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국내시장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어떻게 이 사업을 할수 있느냐에 관한 활발한 논의는 1980년 공정거래국의 증권거래소에 대한 법적 제재에 의해 중단되었다. 증권거래소는 본래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규칙 을 보호할 것이냐 1백가지 이상의 거래관행에 관한 제한을 철폐하는데 합의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은 쉬웠으나 결과적으로 그 소송이 준비되는 3년동안 변화는 중지되었다. 결국 1983년 증권거래소와 정부가 법원외 에서 이룬 합의로 침체는 끝나고 3년만에 주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동안 억눌려서 나타나지 않았던 변화들이 일시에 쏟아지자 그 결과는 실로 장관이 었다. 그 합의에 따라 증권거래소는 2가지를 양보하게 되었다. 최저수수료규정철폐 와 참가회원권의 외부개방이 그것이다. 이러한 양보는 너무나 근본적인 것들이어서 증권거래소는 단일자격과 더불어 중매시장체계를 포기해야만 했다.

전세계에서그 대체 방안이 될만한 시장체제를 모색한 후 런던증권 거래소는 미국의 NASDAQ의 중심개념을 적용하기로 했다. 중매시장체제와 가장 유사한 전자식시스팀으로 이는 이중자격 마킷메이킹을 지지하고 있다. 그 결과 나타난 런던의 거래체제는 SEAQ라고 불리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에 대해 모든 마킷메이커들의 경쟁시세를 수집해 대조, 공표한다.

1986년11월 빅뱅이 있은 지 10일후 영국정부는 금융서비스법안을 통과 시켰다. 이것은 증권투자위원회(SIB)산하에 증권업에 대한 또다른 새로운 조직을 둘 수 있도록 했다. SIB는 증권거래소를 인가하고 시장을 감독한다. 또한 독립적인 자율조직을 인가하여 그 조직으로 하여금 증권회사들을 규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법안은 처음으로 유러본드에 참여한 모든 회사들을 규제할 수 있게 해주 었다. 이 변화에 대비하여 해외에 본사를 둔 많은 증권회사들이 자율규제 조직 ISRO 을 구성하여 그들의 특정이익과 사업방식을 대변하도록 했다. 1986 년 증권거래소와 ISRO는 각각 반반씩의 인원이 참가한 국제증권거래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해서 1986년 10월 빅뱅이 일어난지 얼마 안돼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자율제체.증권거래소의 새로운 구성 .시장의 신규 참여자 등장 .기존회사의 새로운 소유주, .회사들의 합병, .비고정 수수료, .새로운 거래메커니즘, .새로운 거래지원체계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거래의 장이 객장에서부터 스크린과 전화로 이동됐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이게 전부는 아니다. 영국은행은 이 기회를 이용해 이제 까지 여러해 동안 증권거래소에 의해 운영되고 규제되던 정부채권시장을 재편성, 규제하기로 했다. 미국 재무부채권시스팀을 모델로 한 새로운 구조에서는, 은행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일단의 1차딜러들이 채권의 발행과 거래를 위한 도매시장을 운영하고 중개인과 은행들에게 보다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멤버회사들은빅뱅이 일어나기 전 기간에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다양한 전략 들을 채택했다. 군소회사들 뿐 아니라 몇몇 대형회사들도 은행과 해외중개인 들의 시장접근요구를 이용하여 엄청난 액수의 돈을 받고 동업 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몇몇 회사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호어 고베트는 퍼 시픽증권으로 (7천8백만파운드에 팔림) 팔렸고 그 회사는 다시 빅뱅직후 철수했다. 그린웰스는 미들랜드은행에(3천만파운드로) 들어갔으나 미들랜드은 행이 주식거래를 그만두었다. 스크림거와 빅커스 다 코스타는 시티 은행에(7 천5백만파운드에) 팔렸으나 그 은행도 후에 주식시장에서 손을 뗐다.

그밖에다른 회사들은 중개인과 객장딜러와 머천트뱅크를 통합했다. 예를 들면 워버그는 애크로이드&스마이더스와 로&피트먼을 7천5백만파운드에 매입 했다. 버클레이즈는 조트&비번과 웨드듀레처를 1억2백만 파운드에, 클레인워트 벤슨은 그리브슨 그랜트를 4천4백만 파운드에 샀다. 이들 영국에 거점 을 둔 대형그룹들은 꽤 잘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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