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부.업계간 DES(계수암호표준)둘러싼 공방치열

최근 미국에서는 암호기술을 둘러싸고 정부와 업계의 공방이 치열해 지고 있다. 이른바 "클리퍼 칩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은 최근까지 국가안보와 범죄 예방을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암호기술을 통제해 오던 미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통신기기 및 컴퓨터업체간의 팽팽한 대결이다.

국가안보위원회(NSA)를비롯한 미정부산하의 수사기관들은 지금까지 두 차례 의 세계대전과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제전화를 비롯, 팩스 PC통신등 통신매체에 대해 합법적인 도청을 실시해 왔으며, 모든 종류의 암호도 풀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 왔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암호기술 표준을 설정하는 동시에 이 기술을 금수조치함으로써 해외에 누출되는 것을 방지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NSA는 민간이 사용하던 그리 강력하지 못한 암호체계 인 "계수암호 표준(DES Digital:Encripti-on Standard)"을 수퍼컴을 이용해 칼로 두부자르듯 마음대로 무력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지난 수년간 컴퓨터의 확산과 더욱 강력한 암호 연산능력을 가진 제품이 등장하면서 NSA의 이러한 도청활동이 원활치 못하게 됐다. 또한 도청방지기능이 강화된 전화기도 잇따라 출현했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 1월 컴퓨터 업계가 NSA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강력한 암호표준을 새로이 제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렇게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기술정책논쟁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클리퍼 칩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정부측은 NSA.CIA.FBI등 3대 첩보기관이, 그리고 민간에서는 다수의 컴퓨터업체를 비롯, 칼럼니스트.혁신주의자.그리고 암호 전문가들이 이 공방에 참여했다.

논쟁의초점은 지난해 NSA가 VLSI테크놀로지사등의 업체에 의뢰해 제작한 클리퍼칩이다. 미정부가 강력한 암호 앨고리듬을 조합한 클리퍼칩을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PC모뎀.전화기.팩스등의 통신장비에 설치할것을 의무화 하는입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다. 물론 클리퍼칩에는 영장을 발부 받은기관이 마스터키로 열어서 합법적으로 도청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다. 미정부는 마약밀매조직.테러리스트.간첩등의 통신내용을 파악하는 기술을 갖추기 위해 클리퍼칩 사용의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초 논쟁의 시발점은 정부가 클리퍼칩계획을 최초로 공표한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후 거의 1년동안 반클리퍼진영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공세를 취했다. *클리퍼칩을 장착한 전화기를 사용하는 범죄집단은 없을것이다 *미국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통신장비를 타국에서 구매하려 하겠는가 *수사기관의 도청권이 남용되기 쉽다. *해커가 클리퍼칩의 앨고 리듬을 풀 경우를 가정해보라는 등의 견해다.

그동안정부는 이러한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급기야 사태는 컴퓨터업계가 독자적인 암호표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단계까지 진전됐다. 이에 대해 일반인들은 "빅 브라더"와 흡사한 클리퍼칩이 시민 개개인의 소중 한 사생활마저도 송두리째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3월초타임지와 CNN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설문대상자의 3분 의2가 통신상의 사생활보호가 국가안보 및 범죄소탕을 목적으로 한 도청활동 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클리퍼 칩의 채택에 대해서는 80%가 반대함 으로써 여론은 정부측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발표 직후인 2월초에 미정부는 NSA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고 발표함 에 따라 현재 연방행정기구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통신에 대해 클리퍼기술 을 사용토록 했다. 업계에도 클리퍼기술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반클리퍼진영의 반대가 당장 사그러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암호기술산업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함에 따라 통신기기의 해외수출이 격감,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입장이다. 또한 일부단체를 중심으로 클리퍼기술을 채택하는 업체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적으로 정부의 정책에서 이탈하는 업체 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문제는 결국 미국 연방 대법원의 최종판정에 맡겨지겠지만, 그 결론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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