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 이익 전망 견조한데 과도한 시장 조정 지적도
한국 증시가 올해 초 반도체 랠리로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던 시장에서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시장으로 급변했다. 외국인 매도세와 거시경제 불확실성,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면서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이 금융위기 당시를 연상시키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PER은 약 4배로 하락했다. 연초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넘었던 주요 증시 가운데 이처럼 낮은 수준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코스피는 6월 22일 9,114.55로 사상 최고 종가를 기록했다. 이후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대되고 금리와 국제유가 등 거시경제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수는 급격한 조정을 받았다. 최근 4개월간 하락률은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시된 수치로는 37.1%에 달한다.
선행 PER은 향후 12개월간 예상되는 기업 이익에 비해 주가가 어느 수준에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수치가 낮을수록 예상 이익 대비 주가가 저렴하다는 의미지만, 시장이 향후 실적 둔화나 위험 확대를 예상해 주가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에도 PER은 하락할 수 있다.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다른 아시아 시장과 비교해도 낮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종합지수의 선행 PER은 약 8배로 코스피의 두 배 수준이다. 대만 가권지수는 약 16배에 거래되고 있어 한국 증시의 네 배에 달한다. 인도네시아가 시장 접근성과 투자 환경에 대한 우려로 MSCI의 등급 강등 경고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한국 증시의 낮은 평가 수준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번 급락은 한국 증시의 오랜 과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다시 부각하고 있다. 올해 초 반도체 대형주가 상승세를 이끌기 전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과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에 불만을 제기해 왔다. 최근의 조정은 AI 관련 우려가 기술주 비중이 높은 시장의 투자심리를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ACG매니지먼트의 후이링 로 전무는 공격적인 AI 투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견조한 실적과 전망이 투자심리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 선호뿐 아니라 차입 비용 상승이 AI 관련 기업의 투자와 수익성에 미칠 영향도 따져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일제히 약화한 것은 아니다. 반도체 수요 호황에 힘입어 한국의 연간 수출은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도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와 이익 전망의 괴리는 최근 조정의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코스피가 6월 고점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가운데 같은 기간 12개월 선행 이익 전망치는 오히려 22% 상승했다. 이는 주가 하락이 예상 이익의 감소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이익 전망이 실제 실적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코스피는 연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약 31% 높은 수준이다.
시장의 관심은 낮아진 밸류에이션이 저가 매수 기회인지, 아니면 아직 실적 전망에 반영되지 않은 위험의 신호인지에 쏠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의 지속 가능성, AI 관련 자본지출의 수익성, 높아진 차입 비용이 향후 기업 실적에 미칠 영향이 핵심 변수다.
율리우스베어의 마크 매슈스 아시아 리서치 총괄은 블룸버그TV에서 AI 수요가 여전히 공급을 크게 웃돌고 있다고 진단하며, 최근 반도체주에서 나타난 급격한 조정이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의 낮아진 PER은 한국 증시의 가격 매력이 커졌다는 신호인 동시에, 투자자들이 미래 이익의 지속 가능성에 더 큰 위험 할인을 적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도체 업황과 AI 투자가 예상대로 이어질지,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완화될지가 한국 증시의 재평가를 좌우할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