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보안의 목표가 달라지고 있다. 외부 침입을 차단하는 전통적인 보안에서 공격을 견디고 복구하는 보안으로, 나아가 공격 경험을 학습해 더욱 강해지는 보안으로 진화하고 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업의 보안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보호 범위를 넓히고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보안체계를 통합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보안의 목표는 침입과 사고를 막는 '시큐리티(Security)'였다. 성벽을 높이고 문을 잠가 공격자의 침입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방화벽과 백신을 설치하고 계정과 권한을 관리하며 기업 내부와 외부를 구분했다. 기업의 경계가 명확하고 대부분의 시스템이 내부에 구축됐던 시기에는 효과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전제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기업 업무는 클라우드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에서 이뤄지고,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오픈소스와 외부 서비스를 조합해 개발된다. 직원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시스템에 접속하며, 협력사 시스템도 기업 내부 시스템과 상시 연결된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을 대신해 데이터를 읽고 판단하며 업무까지 수행하기 시작했다. 공격자가 침투할 수 있는 경로가 기업의 경계를 넘어 확장된 것이다.
보안의 두 번째 목표로 '레질리언스(Resilience·복원력)'가 강조되는 배경이다. 복원력은 공격을 받더라도 핵심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며, 신속하게 정상 상태로 복구하는 능력이다.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침해사고가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거나 사회 전체의 기능 마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유럽연합(EU)이 금융기관에 디지털 운영 복원력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안의 관심이 침해 발생 여부에서 침해 이후에도 핵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로 이동하고 있다.
복원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은 '안티프래질(Anti-fragility)'이다. 충격을 받은 뒤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더욱 강해지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공격 경로와 취약점, 탐지 방식과 대응 경험을 학습하고 다른 기업과 제품에 반영한다면 침해사고는 단순한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이 충돌시험을 반복하며 안전성을 높이고, 항공산업이 사고와 아차사고를 분석해 안전도를 개선해 온 것과 같은 원리다.
보안의 발전 방향은 '시큐리티→레질리언스→안티프래질'로 정리할 수 있다. 공격을 막는 보안에서 공격을 견디는 보안으로, 다시 공격에서 배우고 더욱 강해지는 보안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신뢰(Trust)' 확보다. 디지털 경제에서 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고객은 자신의 돈과 개인정보가 안전하다고 믿을 때 금융서비스를 이용한다. 기업은 상대방의 시스템과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어야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연결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AI 역시 결과와 행동에 대한 신뢰가 확보돼야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다.
보안이 확보되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지고 거래도 위축된다. 반대로 안전성과 복원력이 검증되면 새로운 거래와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보안이 단순한 비용 지출 영역을 넘어 디지털 경제의 거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시설로 평가받는 이유다.
보안의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변화가 요구된다. '확장·연결·통합'이다.

첫 번째는 보안 영역의 확장이다.
과거 보안은 네트워크와 서버, PC를 보호하는 기술로 인식됐다. 그러나 보호 대상이 클라우드와 SaaS, API, 데이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공급망을 넘어 AI 모델과 AI 에이전트까지 확대됐다.
보안기술도 다른 기술과 결합해야 한다. 방화벽 기업이 방화벽 기술만 확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클라우드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 API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AI 모델이 어떤 권한을 갖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AI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보안 역량이 요구된다. AI 개발자는 모델 성능뿐 아니라 권한과 데이터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 클라우드 엔지니어는 설계 단계부터 인증과 권한, 로그 관리와 복구 기능을 반영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역시 외부 부품과 라이브러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미래 보안기술은 전통적인 보안과 AI·클라우드·소프트웨어 기술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는 연결이다.
기업이 자체 보안체계를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협력사가 침해되면 공격자는 협력사 시스템을 우회 경로로 활용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이 안전하더라도 외부 소프트웨어 부품에 취약점이 존재하면 전체 시스템이 위험해질 수 있다. 보안 수준이 높은 영역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연결 지점에서 침해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공격자들은 이미 서로 연결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취약점과 계정정보, 공격도구를 거래하고 랜섬웨어 공격에서도 침투와 확산, 협상, 자금세탁 등의 역할을 분담한다. 반면 방어자는 기업과 기관별로 분리돼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방어체계 역시 개별 기업 중심에서 공동 대응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한 기업이 경험한 공격을 다른 기업의 예방정보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보안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 산업계와 정부, 연구기관 사이에서 침해사고 경험과 위협정보가 공유되고 순환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세 번째는 통합이다.
기업에는 이미 수십 개의 보안제품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보안제품이 서로 분리돼 작동하면 개별 제품이 포착한 위험 신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기 어렵다. 보안제품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가령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계정이 사용되고 같은 사용자의 단말에서 악성행위가 발견됐다면 두 가지 위험 신호를 결합해 판단해야 한다. 위험도가 높아지면 중요 시스템 접근 제한과 기존 세션 종료, 관리자 권한 회수, 단말 격리 등 후속 조치까지 자동으로 연계돼야 한다.
하나의 보안제품에서 경고가 발생할 때마다 담당자가 다른 관리화면에 접속해 개별적으로 조치하는 방식으로는 AI 기반 공격의 속도에 대응하기 어렵다. 보안제품과 정보를 통합해 위험 탐지부터 판단, 대응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확장은 보안의 적용 범위를 새로운 기술 영역까지 넓히고, 연결은 개별 기업 중심의 방어를 공동 방어체계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통합은 분산된 보안정보와 제품을 연계해 일관된 대응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세 가지 변화가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공격을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격을 견디며, 침해사고 경험을 학습해 더욱 안전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결국 보안은 디지털 경제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다. 신뢰가 확보돼야 기업과 개인의 거래가 이뤄지고 새로운 서비스도 성장할 수 있다.
김인현 한국제로트러스트보안협회 회장(투이컨설팅 대표) ihkim@2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