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용의 AI 인텐트] 〈4〉 자사 데이터의 함정…왜 CRM은 미래 성장을 보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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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용 어센트 AI 대표

기업은 보통 자신이 고객을 잘 안다고 믿는다. 고객관계관리(CRM)에 쌓인 방대한 이름과 구매 이력, 자사 앱 방문 데이터와 연결된 이탈 구간 분석, 여기에 순고객추천지수(NPS 추적과 고객 세그먼트 정리까지 마치고 나면 고객을 정교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장기 성장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잘 안다고 자부하는 고객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이미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한 사람들, 즉 기존 고객이다.

CRM, 웹로그, CDP, POS로 대표되는 '모수 데이터(Partial Data)'는 기존 고객의 리텐션을 관리하고 이탈을 방지하는 단기 운영 의사결정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자사 데이터 안에는 한 번도 우리 웹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은 사람, 우리 브랜드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 혹은 경쟁사 제품을 살지 고민 중인 사람들의 신호가 단 1비트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성장의 눈으로 바라볼 때 자사 데이터는 심각한 편향(Bias)을 내포한다. 소비자가 처음 어떤 문제 상황에 직면했는지, 어떤 고민과 비교 검색을 거쳐 우리 카테고리의 문을 열게 되었는지는 자사 DB에 기록되지 않는다.

기존 고객 데이터만 들여다보는 마케팅은 마치 열차 안에 탄 승객들만을 대상으로 다음 목적지를 물어보는 것과 같다. 열차 밖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세계적인 마케팅 과학자인 바이런 샤프 교수는 그의 저서 '브랜딩의 과학(How Brands Grow)'을 통해 브랜드 성장의 진짜 원천을 명확히 증명했다.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스케일업은 기존 충성 고객의 구매 빈도를 소폭 점유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우리 브랜드를 사지 않은 사람, 가끔 사거나 아직 우리를 모르는 '미고객(Uncustomer)'이 브랜드를 새로 선택하게 만드는 데서 비약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미고객의 세계야말로 브랜드에게 가장 거대한 시장이자 성장의 진짜 무대다. 그러나 기업 내부의 시선만으로는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장의 진입로를 볼 수 없다. 브랜드 성장이 정체되는 가장 흔한 실수는 '내부 고객을 다루는 집요함'과 '바깥의 미고객을 끌어당기는 확장성'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미고객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하는 한, 브랜드는 소수의 기존 고객을 향한 제살깎기식 할인 쿠폰과 소모전만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 바깥에 존재하는 미고객의 진짜 의도와 생활 맥락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바로 '전수 검색 데이터(Total Search Data)'다.

검색은 타인의 시선이나 기업의 인위적 개입 없이, 혼자 있는 익명 공간에서 소비자가 스스로 필요에 의해 일으키는 가장 솔직한 행동이다. 포커스그룹인터뷰(FGI)가 왜곡된 정당화와 기억의 착오를 동반하고, 소셜미디어 버즈 데이터가 과시적 페르소나를 반영한다면, 검색창은 소비자의 실제 결핍과 문제가 가공되지 않은 채 기록되는 유일한 장소다.

미고객은 브랜드 이름으로 카테고리에 진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선크림'이라는 카테고리보다 앞서 '화잘먹 선크림', '피부과 선크림 추천', '화장 안 밀리는 저자극 선크림'처럼 자신들의 삶 속 구체적 장면(CEP, Category Entry Point)과 속성의 언어로 카테고리의 문을 연다.

이 고해상도의 언어들은 자사 CRM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절대 튀어나올 수 없는 미고객의 원초적 질문들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하기 직전, 삶의 제약과 조건 속에서 던지는 이 검색 신호야말로 브랜드가 AI 의미 공간과 인간의 기억 공간에서 선점해야 할 진짜 성장의 좌표다.

이제 마케터는 대시보드 안의 화려한 자사 데이터 환상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자사 데이터를 넘어 전수 검색 데이터가 가시화해 주는 미고객의 솔직한 맥락을 읽어낼 때, 브랜드는 비로소 정체를 뚫고 새로운 성장의 문을 열 수 있다.

박세용 어센트 AI 대표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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