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상반기 한국의 수출액은 4967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수입까지 합하면 불과 6개월 동안 8551억달러가 넘는 상품이 국경을 오갔다. 우리는 수출이 늘고 줄었다는 소식에는 민감하지만, 그 대금이 어떤 방식으로 결제되는지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최근 이 무역결제 방식에 변화가 엿보인다. 2025년 국내 기업이 수출하고 받은 대금의 84.2%는 달러였다. 원화 결제 비중은 전년보다 0.8%포인트 증가해 역대 최고점을 찍었지만 여전히 3.4%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받은 달러는 은행과 환거래망을 거쳐 국내로 들어오고, 수입대금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안정적인 방식이지만 중개 은행을 하나 거칠 때마다 수수료가 붙고 각국의 영업시간과 정산 일정에 맞추느라 입금까지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이 구조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오고 있다. 개인 간 해외송금을 넘어 기업간(B2B) 결제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아직 시장은 초기 단계지만, 2025년 B2B 스테이블코인 결제액은 약 2260억달러로 전년의 7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비자 등 글로벌 결제기업도 결제망에 스테이블코인을 연결하고 있다. 기존 은행계좌를 통한 결제뿐 아니라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출입 대금을 보내고, 이를 현지 통화로 교환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는 셈이다.
수출입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관심사는 대금을 얼마나 빠르게 효율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느냐다. 해외 거래처와 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환전과 중개를 거치는지, 받은 돈을 언제 운전자금으로 쓸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24시간 결제가 가능하고 중간 정산 과정을 줄인다면 자금 회수와 운용에도 여유가 생긴다. 앞으로 전자선하증권과 송장 같은 무역서류까지 결제와 연결되면 물품의 이동과 대금 지급을 연계하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의미가 더 크다. 대기업에 비해 환전이나 송금 수수료의 협상력이 낮고 해외 자금관리 수단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대금 회수기간이 짧아지고 해외 거래처와의 결제가 간편해지면 매출채권을 현금화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만큼 다음 생산과 주문에 필요한 자금을 빨리 투입할 수 있어 현금흐름에도 도움이 된다.
무역결제의 변화는 개별 기업의 비용 절감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출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결제와 환전, 자금 이동에서 발생하는 작은 차이도 전체로 보면 커진다. 그동안 한국의 제조업이 상품을 잘 만들어 세계 시장을 넓혀왔다면, 앞으로는 상품 대금이 오가는 금융 인프라의 경쟁력도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
그래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가 중요하다. 제도가 뒷받침돼야 기업도 새로운 결제 방식을 시험하고 금융사와 협력해 실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또 발행 주체와 안정성이 법안의 주요 쟁점이었다면, 이제는 제도 이후 어떤 시장을 만들지도 생각할 때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역결제의 기반으로 성장한다면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렇다고 당장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이 원화의 국제적 사용 범위를 넓힐 기회다. 달러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유연하게 교환되고 무역결제에 함께 쓰인다면 원화도 글로벌 결제망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자금 이동이 빨라지는 만큼 외환 관리와 자금세탁 방지 등 예상되는 위험에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시작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발행 자체보다 실물경제에서 얼마나 널리 쓰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상품의 대금을 주고받는 금융에서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국내 결제수단에 가두지 않고 무역과 금융의 접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