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2000억달러 규모 대미 전략투자 사업을 공식 발표하며 조기 성과를 과시했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1호 확정 사업인 텍사스 가스발전소를 제외하면 원전과 알래스카 등 굵직한 프로젝트 곳곳에 상업성 검증과 공정 지연이라는 현실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뇌관은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내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이 건설된다”며 500억달러 이상 투자를 못 박았지만, 정부는 “MOU상 상업적 합리성과 관련 국내법 절차를 전제로 검토에 착수한다는 것이며, 투자 여부나 규모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알래스카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명확한 해석 차이를 뒀다.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은 수십년간 천문학적인 공사비와 영구동토층 시공 난도 탓에 경제성 입증에 실패해 온 프로젝트다. 중동 분쟁에 따른 가스 가격 상승과 해상 공급망 불안으로 과거보다 수급 다변화의 가치가 일부 커졌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글로벌 가스 시황의 변동성을 고려할 때 언제든 '조 단위 적자 늪'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팩트시트에 관세 인하 등 안전판을 내걸고 “투자 여부나 규모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며 연일 미국의 기정사실화에 제동을 거는 이유기도 하다.
1호 확정 사업인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도 낙관은 이르다. 연료비 변동 위험을 수요자가 지는 '톨링(tolling)' 방식 전력구매계약(PPA)을 채택해 15% 안팎의 수익률을 노리지만, 향후 빅테크 데이터센터들과의 실제 단가 협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20년간의 자금 회수 계획(430억~450억달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원전 프레임워크 역시 미국 현지의 취약한 시공 인프라를 극복해야 한다. 과거 미국 보글 3·4호기가 잦은 설계 변경과 공급망 마찰로 공사비가 2.5배 폭증(350억달러)했던 전철을 밟을 경우 예비비 200억달러로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총투자금 1200억달러 중 1000억달러는 순수 건설비(overnight costs)로 묶고, 200억달러는 예비비(contingency reserves)로 별도 배정했다. 공정이 안정적으로 관리돼 예비비를 쓰지 않더라도 이를 모두 투자 이행액으로 인정받도록 해 추가 재정 부담을 원천 차단한 상태다.
또 한전과 한수원은 200조원대 누적 부채 등 재무 부담을 고려해 상징적 수준으로만 참여하고, 자금력과 해외 진출 의지가 풍부한 국내 민간 대기업들이 대거 지분 투자에 합류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가 원전 인허가 기간을 18개월로 대폭 단축하고 한국의 입증된 공급망이 직접 투입되는 만큼,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공기 지연 리스크를 통제하면서 글로벌 원전 시장을 한미가 양분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게 정부 설명이다.
결국 향후 과제는 '투자 확정'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미국의 압박을 버텨내고, 각 프로젝트별 본계약 체결 때까지 '현미경 검증'을 관철하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와 자국 내 인프라 조기 착공 성과를 위해 한국을 계속해서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털어내는' 냉철한 협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