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몸쓰는 일을 해야 하나.” 지난달 한 위원회에서 만난 데이터사이언스학과 교수의 말이다. 생성형 AI의 코딩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자신의 일자리 역시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생성형 AI를 개발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또한 향후 AI가 신입 사무직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소 과장된 전망처럼 들릴 수 있으나, 노동시장의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빅테크 기업의 대졸 신입 채용은 눈에 띄게 줄었고, 고소득 전문직도 예외가 아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처럼 오랜 기간 공부와 훈련을 거쳐 진입하는 직업들까지 AI의 대체 가능성이 거론된다. “공부를 잘해 전문직에 들어가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부모 세대의 성공 공식이 자녀 세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부모의 고민은 깊어진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부모는 자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는 AI 활용 역량이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누군가는 평범한 결과에 머물고, 누군가는 더 높은 수준의 해법을 끌어낸다. 차이는 지식의 양에만 있지 않다. 질문의 수준, 맥락을 이해하는 힘, 그리고 AI를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사고력이 성과를 가른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많이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AI와 함께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둘째는 관계 역량이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거나 사회적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은 늘고, AI를 통해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접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사람과 관계 맺는 힘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상대의 불안을 읽고 신뢰를 쌓는 일, 팀원들과 협력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 마지막 순간에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이런 능력은 교재나 문제집만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타인과 부딪치고, 갈등을 조정하고, 함께 책임을 나누는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일수록 대체로 관계 속에서 길러진다.

셋째는 회복 탄력성이다. AI의 발전 방향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망한 전공과 직업을 미리 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정해진 경로를 무리 없이 따라가는 아이보다, 실패한 뒤에도 다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아이가 더 강하다. 실패는 더 이상 피해야 할 경험만은 아니다. 실패를 견디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다시 일어서는 힘이 중요해지고 있다. AI는 주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어도, 좌절을 통과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지는 못한다. 실패를 성장의 자산으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인간만의 능력이다.
결국 AI 시대의 부모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자녀의 학습 경로를 빈틈없이 설계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아이가 관계를 맺고, 책임을 맡고, 실패를 수습해보는 과정을 지켜봐 주는 든든한 기반이 돼야 한다. 친구와 갈등을 풀어보는 경험, 공동의 과제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경험, 실수 이후 다시 회복하는 경험은 어느 시험 성적보다 오래 남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를 맞히는 일이 아니다. 어떤 아이가 변화 속에서도 끝내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본질적인 준비일 것이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wiset@wiset.or.kr
◆문애리 이사장은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화학·생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으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민간위원장과 UN 과학기술전문가그룹 위원 등을 맡아 과학기술 정책과 국제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