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철학의 정수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매 순간 변하며, 영원히 고정된 실체는 없음을 가르친다. 그리고 수연성사(隨緣成事)는 끝없이 변화하는 인연(緣)에 따라(隨) 일을 성취하라(成事)는 지침을 준다. 그저 몸을 맡겨버리는 '방관'이 아니라, 변화를 통찰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이 말들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의 최전선에 있을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들이 과거의 성공 방식이 영원하리라 믿는 '잘못된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깨어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 해체(Unlearning)와 재구성(Relearning)을 요구하는 경구(警句)다.
산업계의 고용 동향이 냉혹하다. 생성형 AI가 과거 신입 사원들이 수행하던 기초 업무를 대체하면서, 이른바 '엔트리 레벨(Entry-level)'이 실종됐다. 기업은 가르쳐서 쓸 신입을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에 AI 시대의 대학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현장의 난제를 AI라는 도구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실무적 지혜와 회복탄력성으로 증명돼야 한다. '박제된 지식의 전수'를 파기하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지능의 연기(緣起)적 흐름의 주인공(主人公)이 돼 'AI와 인간의 지성이 만나 새로운 인연(因緣)을 맺고 인류를 위한 지식을 생성하는 역동적 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무장해야 한다.
목표는 명확하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쓰는 사용자가 아니라 'AI를 부품으로 사용해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아키텍트'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두 가지 혁신을 이뤄야 한다.
첫째는 교육과정의 혁신이다. ?경계의 제거:소프트웨어(SW) 중심의 컴퓨터과학(CS)과 하드웨어(HW) 중심의 컴퓨터공학(CE) 교과과정을 완전히 통합해 지능(AI)과 신체(Physical)가 하나로 결합된 피지컬 AI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레거시의 혁신:기존 CS·CE 과목을 AI 풀스택(Full Stack)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오픈소스(OSS)를 비롯한 실무지식을 교과목 내부로 깊숙이 내재화해야 한다. ?실전적 완성: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 연계 캡스톤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설계부터 구현, 검증까지 시스템의 전 생애주기를 직접 경험하며 아키텍트로서의 역량을 완성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물리적 시간의 제한'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한 학기 18학점이라는 굴레 속에서 학생들이 시스템 아키텍처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에 둘째로, '교과목 수 비례 등록금(Per-Credit Tuition) 제도를 제안한다. 세계적 명문대 공대생들은 평균 9~10학기를 이수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깊이를 더한다. 우리도 수강 교과목 수에 비례한 등록금을 부과해, 학생의 능력과 사정에 따라 한 학기에 3~4과목에만 집중해 자신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아 갈 수 있는 '시간적 주권'을 돌려줘야 한다.
이 제도는 학생에게는 깊이 있는 몰입을 통한 전문 능력의 확보, 대학에는 교육의 질적 고도화를 선사할 것이다. 물론 대학은 예산의 불확실성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8학기'라는 경직된 틀에 갇힌 재정 지원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대학의 예산 불확실성을 국고 지원으로 안정화시키고,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에 용기를 불어넣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의 재학 기간 연장을 지원하는 장학금 지급을 제도화해야 한다.
'무지(無智)'는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이며, '무득(無得)'은 얻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精進)하는 기개(氣槪)다. 대학들이 과거의 성공 방식이라는 껍질을 깨고 '학문을 위한 시간적 주권'을 인정할 때, 기업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 인재들을 맞이할 수 있다.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klee@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