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AI 전환시대, K-R&D 도약 위한 3책5공제도의 유연성 확보

Photo Image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장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내린 기술사업화 및 창업 목적 과제의 '3책 5공' 제외 결정은 우리 R&D 생태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현장의 갈증을 정확히 짚어낸 이번 결단은 성과 창출형 R&D로의 대전환을 알리는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과거 '3책 5공' 제도가 도입된 명분은 연구비의 수도권 쏠림 방지와 연구자의 연구 몰입도 제고였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실효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현장의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다행히 이번 조치로 일부 규제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연구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체계와 예산의 유연성 측면에서 개선 및 보완돼야 할 사항들이 눈에 띈다.

정부는 2026년 R&D 예산을 30조원 규모로 회복하며 기술사업화와 전략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3책 5공' 예외 트랙을 대폭 신설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공공연구성과 가치창출(2조1000억원), 중소벤처기업부의 TIPS 및 산학협력 창업(1조8000억원), 산업통상부의 비즈니스 모델 기반 R&D(1조5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물지 않고 시장으로 흘러가게 하려는 이러한 정책적 결단은 충분히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연구 현장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특정 사업에 국한된 예외 조항을 넘어 전 부처 단위의 보편적인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현재 부처별로 파편화된 예산구조와 대학 산학협력단의 행정적 부담은 한 연구자의 실질적인 연구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형식적인 과제 수 제한은 풀렸을지 몰라도 인건비 계상 한도와 '참여율 100%'라는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유능한 연구자의 발목을 잡는 '제2의 3책 5공'으로 작동하고 있다. 진정한 혁신은 일부 사업의 빗장을 푸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실질적 투입 자원과 자율성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규제를 정비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은 '초광역 협력'과 '융복합'이다. 하나의 딥테크 창업을 위해서도 소재, 부품, 장비는 물론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전문가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현행 제도는 유능한 전문가가 여러 융합 프로젝트에 10~20%의 자문 성격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이미 '책임 3개'가 차 있으면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행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이 제도의 본래 명분이었던 '수도권 쏠림 방지' 역시 통계 앞에서 무색해진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와 KISTEP 등의 자료에 따르면, 3책 5공 제도가 유지된 지난 10년간 수도권 대학의 R&D 예산 점유율은 여전히 50~60% 선(서울 약 40%, 경기·인천 약 15% 내외)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Photo Image

이는 인위적인 과제 수 제한이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끄는 실효성 있는 도구가 되지 못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우수 연구자의 발을 묶어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최적의 인재를 배치하지 못하는 비효율만 낳았을 뿐이다. 지역 불균형 문제는 '지원을 늘리는 인센티브'로 풀어야지, '우수 연구자를 묶는 규제'로 풀어서는 안 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나 국립과학재단(NSF)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자가 참여하는 과제의 '개수'를 세지 않는 대신 연구자가 실제 투입하는 시간 단위인 'Person-Months(노력 분율)'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 연구자가 10개의 과제에 참여하더라도 각 과제에 10%씩 정당하게 기여한다면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

특히 AI가 연구의 전 과정을 보조하며 생산성이 과거 대비 비약적으로 상승한 현시점에서, 연구자의 가용 범위를 40년 전 잣대인 '3'이나 '5'라는 숫자로 제한하는 것은 스포츠카에 마차 속도제한을 적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능한 연구자는 자신의 핵심 기술을 여러 프로젝트에 '공유(Sharing)'하고 '연결'하는 지식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 과제 숫자를 세는 규제는 이러한 네트워크 기반의 협력 연구를 '과제 중복 수행'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미국과 한국의 연구 환경은 다르다. 하지만 KISTEP의 제언이나 해외 사례를 우리 실정에 맞게 토착화하여, '수량 제어'에서 '실질적 기여도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K-R&D 개혁의 소중한 불씨다. 이 불씨를 살려내어 대한민국을 딥테크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 부처가 협력하여 연구자의 손발을 묶는 낡은 족쇄를 완전히 끊어내야 한다.

3책 5공은 과거 연구자의 물리적인 투입시간이 성과를 결정하는 노동집약적인 R&D정책의 유물이다. 이제는 AI가 연구의 복잡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데이터가 성과의 질을 결정하고 있다. AI와 융합의 시대, 우리 과학자들이 더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도록 낡은 족쇄를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기술사업화 후속R&D에 대한 예외 조치만으로초광역, 융복합의 혁신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기술사업화 혁신성과는 R&D단계에서부터 설계되고 성과가 창출돼야 한다. 이제 정부는 단순히 예외 조항을 몇 개 늘리는 임시방편을 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현장이 체감하는 혁신은 예외의 확대가 아니라 규제의 철폐에서 시작된다.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장 겸 한양대 ERICA 산학협력단 제2부단장 techjang@hanyang.ac.kr

◆장기술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장은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지식재산권법을 전공했다. 현재 한양대 ERICA 산학협력단 제2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 기술사업화센터장을 비롯해 기술지주회사 본부장과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