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44〉호모 퀘렌스, 에이전트AI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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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2025년 12월,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대답'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우리가 묻기도 전에 보고서 초안을 내놓고, 코드를 짜주며, 심지어 그림까지 그려준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에이전틱 AI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사람 대신 알아서 일을 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할 것이다.

기술은 점점 더 완벽한 대답과 실행을 향해 달려가는데, 역설적이게도 현장에서 만난 리더들의 표정은 공허하다. “AI가 다 해준다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불안감 마저 감돈다. 필자는 이 불안의 근원을 '질문의 상실'에서 찾는다. 대답하는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질문해야 할 인간은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2026년을 맞이하며, 리더십의 정의는 기술적 관리자에서 본질적 질문자, 즉 '호모 퀘렌스(Homo Quaerens)'로 재정립돼야 한다.

우선 '질문(Question)'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어원인 라틴어 '퀘레레(Quaerere)'는 단순히 묻는다는 뜻을 넘어,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간절히 구하다(Seek)',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집요하게 수사하다(Investigate)'라는 무거운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즉, 리더의 질문은 챗봇에게 던지는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 문제(Why)를 파고드는 지적 탐험이다.

그동안 인류는 도구를 만드는 '호모 파베르', 지식을 축적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정의돼 왔다. 하지만 AI 시대에 이러한 정의는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도구 제작과 실행(파베르)은 로봇과 에이전트가 더 잘하고, 지식의 축적(사피엔스)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간을 압도한다.

그러나 AI가 절대 넘볼 수 없는 성역이 있다. 바로 “무엇이 가치 있는가?”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묻고 정의하는 영역이다. AI는 데이터에 기반한 '최적의 해답'을 제시할 순 있어도, 풀어야 할 '문제의 본질'을 정의할 순 없다. 오직 인간만이 결핍을 느끼고 가치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호모 퀘렌스로 회귀해야 하는 이유다.

2026년의 주인공인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계획하고 도구를 쓰는 자율적 실행가다. 이는 '어떻게(How)'와 '실행(Do)'의 영역이 AI에게 100% 위임됨을 의미한다. “비용을 어떻게 줄일까?” “보고서를 어떻게 쓸까?” 같은 기능적 질문은 더 이상 리더의 몫이 아니다. 그건 AI 에이전트가 1초 만에 최적의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인간 리더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는 '무엇을(What)' 해결해야 하며, '왜(Why)' 그것이 문제인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관점에서 '문제 정의' 역량이라 부른다.

많은 CEO가 “우리 회사에 챗봇을 어떻게 빨리 도입할까?”라는 하수의 질문에 매몰될 때, 진짜 리더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 고객은 왜 상담원 연결을 기다리다 전화를 끊는가?” “시민들은 왜 복지 혜택을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가?”

천안 스마트도시 프로젝트에서 목격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화려한 기술 도입보다 중요했던 건,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시민들이 느끼는 소외감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공감적 질문 덕분에 복잡한 애플리케이션(앱) 대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천안형 GPT'와 지역화폐 기반의 시민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만약 “어떻게 최신 기술을 쓸까?”만 물었다면, 우리는 시민들이 쓰지도 못할 수십억 원짜리 앱을 다시 만들고 실패했을 것이다.

2025년이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AI 도구를 도입하느냐의 '속도(Speed) 경쟁'이었다면, 2026년은 누가 더 깊이, 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느냐, 즉 깊이(Depth)의 경쟁이 될 것이다.

대답은 AI가, 실행도 에이전트가 한다. 하지만 그 AI에게 풀어야 할 문제를 던져주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엉터리 질문에는 AI도 엉터리 대답만 내놓을 뿐이다. 망치질은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당신은 어떤 집을 지을지 고뇌하는 위대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답만 하는 기계들의 시대에, 질문하는 인간이 리더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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