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38〉AI와 '문송'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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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가속화되면서 '문과라서 죄송하다'를 뜻하는 '문송'이라는 신조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 이는 공대를 비롯한 이과 졸업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기업 취업이 어렵고,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과 졸업생에 대한 낮은 인식을 반영하는 용어다. 어쩌다가 인문학, 사회과학, 경영학을 포함한 문과 계열 전공자가 이처럼 찬밥 신세가 되었을까?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한민국을 강타한 코딩 열풍과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 토스)라 불리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빅테크 기업의 개발자 중심 채용에 영향받은 바 크다. 또 현재까지 대학 입시를 휩쓸고 있는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선호 현상도 '문송'의 보편화에 한몫 했다.

미적분과 과학탐구 영역에 대한 이해 부족이 사회 생활이나 업무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 것인데, 기업들의 문과생 기피 사유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많은 이들은 디지털화, 모바일화에 따른 지식정보화 시대 진입과 전공에 따른 정보기술(IT) 이해도 차이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 혁명은 이마저도 바꾸고 있다. 판교를 중심으로 한 IT밸리에서 개발자 품귀 현상은 벌써 오래 전 얘기가 되었다.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LLM)에 기반한 생성형 AI는 파이썬(Python)을 비롯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능숙하게 다룬다. AI 도구의 코딩 실력은 초급 개발자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AI 모델과 외부 데이터 소스 및 다양한 도구를 연결하는 개방형 표준 프로토콜인 MCP(Model Context Protocol)는 정보기술(IT)을 잘 모르는 일반인까지 AI 개발이 가능하게 했다.

AI는 일자리 지도와 일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AI 도구의 보편화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조차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엔 회사가 직원에게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인재상을 요구했다면, AI 시대에 직장이 원하는 인재는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요령이 바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다.

우리는 AI 도구에게 24시간 쉬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다. AI는 주5일 근무를 하지 않으며, 휴가도 없고, 노동조합을 구성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AI는 박사급 지식을 갖추고, 군소리 없이 시키는 일을 해낸다.

생성형 AI가 부각되면서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을 비롯한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에이전틱 AI가 대중화되면서 나만의 AI 비서에게 보다 잘 지시할 수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 각광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문송'하지 않는 이유다. 사회학, 행정학, 심리학을 비롯한 사회과학과 언어학, 철학, 사학을 밑바탕에 둔 인문학이 AI 시대에 다시금 조명받는 근거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수의 문과 출신 창업자들이 빅테크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동영상 생성 AI 분야의 선두주자인 런웨이(Runway)의 CEO인 크리스토발 발렌수엘라(Cristobal Valenzuela)는 학부에서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석사에서는 예술을 전공한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한국의 서학개미들이 애정하는 데이터 분석 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의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학부에서 철학을, 박사과정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문학 기반 인재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국내 대표적 AI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뤼튼'(Wrtn)의 창업자 이세영 대표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AI 데이터 검증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에이아이웍스의 윤석원 대표는 신문방송학, AI 기반 부동산 시세 알고리즘으로 유명한 빅밸류의 구름 대표는 경영학 전공자다. 피지컬 AI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마음AI의 유태준 대표 역시 미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문과 출신이다. 실리콘밸리와 대한민국을 가리지 않고, AI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문송'이 적용되지 않으며, 전공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AI에서는 '개발 능력' 못지않게 '활용 능력'이 중요하다. 이제 AI 문해력(literacy:리터러시)에 강점을 가진 문과생들이 AI 산업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AI G3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AI가 더 이상 IT 엔지니어의 전유물이 아니라 각 산업의 전문가들이 AI 도구를 보다 쉽게, 잘 활용하는 기반이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문과, 이과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은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 곧 시대의 주인공이다. 모두가 손쉽게 AI를 다루는 '모두의 AI' 사회가 하루빨리 정착되길 기대한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scotthwangb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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