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헴프 산업 육성 본격화…의료·소재 산업 새 성장동력 기대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산업용 대마 시장 규모

글로벌 의료·바이오 업계가 '헴프'(산업용 대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향정신성 약품 원료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산업화가 늦어졌지만 최근에는 가공기술 발전으로 글로벌 의료·바이오 기업이 헴프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내 헴프 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 현황과 정책 방안을 살펴본다.

Photo Image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이 헴프 산업을 그린바이오 핵심 분야로 보고 신규 사업 발굴과 연구 기반을 확충하고 있다. 사진은 연구원들이 CBD를 추출·정제하고 있는 모습.

의료·바이오 소재 분야에서 헴프의 산업적 가능성이 주목받는 가운데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이 강원도와 춘천을 국내 헴프 산업의 메카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부정적 이미지와 규제에 묶여있는 대마를 지역 미래를 열어줄 새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강원도, 춘천시 및 대학, 기업과 함께 헴프 산업화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헴프는 대마에서 향정신성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을 제거해 산업용으로 활용 가능한 품종이다. 정신활성 성분인 THC 함량이 0.3% 이하인 산업용 대마로 헴프에 포함된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난치성 질환 치료, 진통제 대체, 불안장애 완화 등 의료적 효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글로벌 제약·웰니스 산업에서 새로운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또 헴프는 바이오소재, 섬유, 식품, 건축 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해 '미래형 녹색산업'으로 불린다. 환경 친화적 작물로 평가받는 헴프는 생육 속도가 빠르고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도 재배할 수 있어 탄소중립 시대에 적합한 대체작물로 꼽힌다.

이에 주목해 해외에서는 헴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등은 이미 헴프 산업을 제도권에 포함하고 규제를 완화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2018년 농업법(Farm Bill)을 통해 헴프를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민간기업 중심의 재배·유통·제품화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2020년 12월 2일 UN마약위원회(CND)는 당국의 허가 시 대마 및 수지 관련 약품의 생산, 제조, 수출입 매매, 소유 또는 사용 허용을 의결했다.

세계 헴프 시장은 2020년 3조1200억원 규모로 추산되며 2028년까지 14조9100억원으로 연평균 21.6%씩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CBD 의료제품, 기능성 화장품, 식음료, 반려동물 치료제까지 시장이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CBD 의약품인 에피디올렉스(Epidiolex)는 2023년 기준 약 9억달러 이상의 글로벌 매출을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헴프 유래 칸나비노이드 성분을 중심으로 800건대의 관련 임상실험이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CBD를 단독으로 한 임상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0년부터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되면서 헴프 및 CBD 산업화의 안전성, 상업성 검증 및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제한적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전국 확산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제도 정비와 인식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용 헴프 연구·개발에 뛰어든 국내 기업도 아직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제약이 많다. 수입에 의존하는 CBD 원료 의약품 역시 기술 자립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헴프 산업에 주목했다. 진흥원은 춘천시가 지원한 '천연소재 대마 연구개발 및 산업화' 사업을 통해 특허출원 및 논문게재, 국가연구과제 수주 1건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를 기반으로 2021년 '강원 그린바이오 한국형 헴프 플랫폼 및 산업화 연구개발'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정 공모한 '지역의 미래를 여는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선정, 총 예산 90억원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사업을 수행한다.

진흥원은 △CBD 고함량 한국형 헴프 품종 개발 △CBD 정제기술 개발 △의료 응용 기반 구축 △헴프 재배 시험포 운영 △헴프 기반 기업 유치 및 지원 △정책 협력 및 규제완화 대응을 골자로 한 헴프 산업 육성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대마품종인 '핑크페퍼'와 '체리킹' 등 2종을 개발, 국내 최초로 특허출원했다. 핑크페퍼는 유전체 분석을 완료해 레퍼런즈 지놈으로 쓰이고, 나고야의정서 대응에도 활용될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와 함께 △스마트팜 수직재배 기술 확보 △칸나비노이드 추출·정제·결정화 기술 개발 △다수 CBD 유도체 화합물 합성 및 대사체 분석 등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또 강원대, 농심, 네오켄바이오, 케이메디켐 등과 함께 CBD를 활용한 항암, 뇌전증 등의 고부가가치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뇌전증치료제와 같이 전량 수입에 의존해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의약품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헴프 의약품 개발뿐만 아니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분야를 확대해 헴프관련 그린바이오산업 규모를 키워나갈 계획이다.

진흥원은 춘천이 강원 바이오산업의 거점이자 대학·의료기관·연구소가 밀집한 도시인 만큼 헴프 산업화 최적지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강원도와 협력해 춘천형 헴프 규제특구 지정도 모색 중이다.

전통 산업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는 강원도는 농업과 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지역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헴프 관련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헴프는 농업, 바이오, 의료, 소재산업이 융합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며 “강원도와 춘천이 헴프 산업의 실증과 상용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기반 조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헴프 산업, 왜 제자리걸음인가> 걸림돌은 ‘규제’와 ‘인식’, 해법은 제도 정비

의료·바이오 신소재로 각광받는 헴프 산업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제한적 실험단계에 머물고 있다. 세계 각국이 헴프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적극 육성하는 가운데 한국은 강한 규제와 사회적 인식의 장벽에 가로막혀 시장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Photo Image
산업용 대마 시장 규모 및 활용분야

가장 큰 걸림돌은 대마가 여전히 마약류 관리법에 따라 강력히 규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헴프도 마약류로 분류된다. 이를 다루려면 식약처의 특별허가가 필요하고 연구나 시범사업도 안전관리, 유통 추적, 지정된 재배지역 내에서만 허용된다. 이로 인해 기업의 진입장벽이 높고 상업화 가능성은 낮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은 관련법을 개정해 헴프 재배, 가공, 유통까지 민간 주도로 허용하고 있으며 의약품, 기능성 식품, 화장품, 반려동물용 제품 등으로 시장을 확장 중이다. CBD는 국내에서 의약품 한정으로 수입·사용하고 있지만 추출이나 제조는 금지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산 헴프를 이용한 제품을 만들 수 없으니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보니 헴프 산업에 대한 오해와 거부감도 걸림돌이다. 제도 개선에 대한 정치적·여론적 부담도 규제 완화를 더디게 만드는 요소다.

현재 안동을 중심으로 규제자유특구가 운영 중이지만 지방정부 단위의 제한적 실험에 머물러 전국적 산업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헴프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법 개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에 따라 연구·산업계에서는 의료용 헴프 합법화 범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CBD 제조 및 의약적 활용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허가 절차를 단순화해 달라는 주문이다. 또 THC 기준을 국제 기준에 맞춰 헴프 내 THC 함량 기준을 0.3% 이하로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용 헴프를 비마약류로 지정해 산업용 헴프 품종에 대해 별도 식물자원으로 분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같은 규제완화와 함께 헴프 추적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스마트팜과 블록체인 기반 유통 추적 시스템 도입으로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뷰>김창혁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장
Photo Image
김창혁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장

“부정적인 이미지와 규제에 묶여 있던 천연 소재 헴프는 이제 지역의 미래를 열어줄 신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헴프 산업을 그린바이오의 핵심 분야로 보고 신규 사업 발굴과 연구 기반 확충을 통해 지역 바이오산업화 기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김창혁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원장은 강원도가 헴프 산업 파이프라인 구축으로 춘천을 중심으로 한 그린바이오 산업생태계 조성,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과 연계한 기술혁신 클러스터 형성을 통해 바이오 허브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원장은 “춘천의 헴프 산업은 지난 5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한국형 헴프 품종 개발과 스마트팜 수직농장 재배기술 확보, 헴프 유효성분 추출 및 정제기술 확보 등 산업화 준비단계를 거쳐 성장 기반을 갖췄다”며 “지금까지 국가 R&D사업에서 확보한 과학적 데이터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과제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최초로 CBD성분의 비임상 독성 시험 평가를 진행 중”이라며 “헴프 천연소재를 활용한 고부가가치 그린바이오 분야 국제경쟁력 확보와 춘천 지역 바이오산업 클러스터 고도화와 산업경제 부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헴프 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지원해온 춘천시, 강원도, 과기정통부의 노력이 지역의 미래 고부가 가치 산업 발굴과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발맞춰 진흥원은 차세대 과제를 다각도로 기획 중이며 단순한 소재 연구를 넘어 실제 산업화와 시장 진입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대폭적인 규제완화 등 정책기조 변화가 필요하다. 김 원장은 “규제가 기술을 막고, 인식이 시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의료 목적의 헴프 활용은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증 연구-상용화-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단계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의료 중심의 안전한 산업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도와 산업 가치를 함께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CBD 중심의 규제 개선과 국가적 R&D 투자, 산업기반 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CBD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중앙정부의 과감하고 실질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역설했다. 이어 “진흥원은 춘천이 강원과 대한민국의 헴프산업 허브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헴프 시장에 진출하고 선도할 수 있도록 중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공동기획:전자신문·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춘천=권상희 기자 shkwon@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