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반도체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만난 반도체 장비사 대표는 “중국 메모리 산업이 내년이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격적인 투자 전략은 한국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중국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범용 D램에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한편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설비투자 규모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에서 투자는 시장 경쟁력과 직결되는데, 중국보다 뒤처진다면 퇴보하게 될 것이란 위기의식이다. 실제로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지난해 투자액은 SK하이닉스의 72.9%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에는 양사가 대등한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일본을 제치고 메모리 1위로 올라섰다. 이제는 중국이 이를 재현할 수 있는 백척간두에 놓여 있다.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 메모리 제조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도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있다.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은 물론이고 인접한 대만에서까지 차량용 반도체를 조달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과 대만 간 지정학적 리스크를 사전 대응하려는 시도다.
중국과 대만을 대체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가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1위 국가일뿐만 아니라 팹리스와 후공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반도체 생태계를 갖췄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반도체 견제의 최대 수혜국은 우리나라가 될 수 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을 기회로 삼아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투자를 재정비해 반도체 강국으로 다시 도약해야 한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