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공지능(AI) 생태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앤트로픽(Anthropic)이 발표한 MCP(Model Context Protocol)의 등장이다. 이전에는 AI 모델이 다양한 외부 서비스와 데이터를 연결할 때마다 서비스마다 별도 프로그래밍 방식이 필요해 복잡성과 비용이 높았다. MCP는 AI 모델이 외부 데이터나 다양한 서비스와 상호작용할 때, 표준화된 형태로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토콜로서 이를 통해 누구나 쉽게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췄다.
지금까지 AI 시장은 빅테크 기업들의 독무대였다. GPT-4,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 등 초거대 AI 모델을 보유한 기업들이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을 지배했고, 후발 기업들은 이들과 직접 경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거대한 자본과 방대한 데이터, 최고의 인재들이 집중된 글로벌 빅테크와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AI 전쟁은 끝났다” “이제 자체 LLM 구축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혁신적 흐름은 이런 비관적 전망을 빠르게 뒤집고 있다. 그 출발은 중국의 딥시크(DeepSeek)였다. 딥시크는 기존의 초거대 모델 방식과 달리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인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시해 자본과 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보여줬다. 여기에 여러 AI모델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들을 쉽게 연결하는 MCP 등장이 또다른 기회를 보여주고 있다.
이전처럼 거대 AI 모델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도구들을 얼마나 유연하게 결합하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캘린더에 기록된 여러 일정 중 “이번 주의 일대 일 미팅 일정만 찾아 시간과 참석자, 요약 내용을 보고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가정하자. 기존의 단순한 챗GPT 플러그인 방식으로는 '일정 조회'나 '일정 추가'와 같은 단순 작업만 가능해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MCP가 구현된 환경에서는 일정 검색, 필터링, 메타데이터 추출, 요약 등의 여러 기능을 하나의 자동화된 흐름(Workflow)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공공분야에서도 생성형 AI의 한계인 환각(hallucination)을 보완하기 위해, MCP를 통해 다양한 분석도구들과 분석형 AI(Analytical AI)를 연계할 수 있다.
핀테크 분야 사례를 들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존에는 고객 데이터 분석, 마케팅, 개인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 등 서로 다른 기능들이 분리된 도구에서 별도로 처리됐다. 하나의 금융서비스를 완성하려면 세일즈포스(Salesforce), 구글 시트(Google Sheets) 와 같은 다양한 외부 SaaS를 개별적으로 연동해야만 했다. MCP가 적용되면 이러한 금융서비스를 하나의 프로토콜에서 손쉽게 연결해 자동화할 수 있다. 예컨대, 한 도구가 고객 정보를 세일즈포스에서 가져오고, 다른 도구는 그 정보를 구글 시트에서 자동으로 분석하고 시각화한 뒤, 고객의 관심사에 따른 맞춤형 금융 상품 안내를 메일로 보내는 작업을 단일한 자동화 에이전트 환경에서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MCP를 중심으로 한 표준화 환경이 빠르게 정착되면,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에 큰 기회가 찾아온다. 그동안 자체 LLM 기술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빅테크들의 초거대 모델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MCP의 등장으로 이제 AI 서비스의 경쟁력은 모델의 크기나 규모보다 얼마나 효과적인 도구들과 연계하여 고품질 결과를 제공하는가로 바뀌게 된다. 즉, 자체 LLM 개발이 늦었거나 기술력이 조금 부족했던 기업들도 이제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체 LLM 개발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가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독자적인 LLM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과의 격차는 MCP의 유연한 생태계를 통해 점차 좁혀질 수 있으며, 이는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효율적이고 차별화된 버티컬 AI(vertical AI)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제 AI 경쟁은 단일 모델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협력적 생태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개별적인 기술 역량이 뛰어난 스타트업과 서비스형 AI(AIaaS)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MCP와 같은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활용하여 기업 간의 강점을 연계하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글로벌 AI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신속하고 전략적인 준비와 지원이 요구된다. 인력 양성과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뿐만 아니라, AI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들에 대한 육성 정책 또한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AI 시장에서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 혁신국장 epoko77@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