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대중적 인기도 이면에 직업적으로 자기자신과 싸움을 거듭한다. 많은 작품을 함께하는 배우동료들과 스태프들의 노력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배우 유재명이 영화 '하얼빈'에서의 모습 못지않은 묵직한 메시지를 건넸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유재명은 극 중 연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들을 뒷받침했던 '최재형'으로 분했다. '페치카 최'라는 별명과 함께 현지 한인들과 독립군을 품었던 아버지이자 형님같은 실존인물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호흡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안중근(현빈 분)과 함께 동지들의 죽음에 눈물을 삼키는 다락방 신은 혈기어린 독립군들을 아우르는 따뜻함과 냉철한 판단력 사이, 당대의 슬픔들을 연상케 했다.
-흥행소감?
▲영화관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도 많이 봐주셔서 감사하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그 분들의 모습에 공감을 해주신 것 같다.
눈물을 흘리시던 나이 지긋한 관객부터 함께 '까레아 우라'를 외치는 분들까지 무대인사로 마주한 관객분들의 다양한 반응들 속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동료들과 스태프들이 지녔던 중압감의 보상을 받은 듯, 뿌듯하고 감사하다.
-최재형 역 캐스팅의 부담은 없었나?
▲우민호 감독과는 내부자들, 마약왕 등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제안을 받고 최재형 선생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많이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됐다. 최재형기념사업회에서 보내주신 디테일한 자료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물론 연해주 독립운동사 전반에 영향을 준 정신적 지주임을 알고 더욱 잘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은근히 저와 닮아보이는 비주얼을 보며 친밀감을 느끼면서도(웃음), 옳은 일에 대한 신념과 시대적 아픔들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시나리오상 감정선은 어땠나?
▲낯선 경험이었다. 지문이나 대사들이 정갈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톤으로 돼있으면서도, 그 사이사이를 꽉 잡는 호흡들이 있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상업영화 가운데서도 그 경계를 잘 타는 느낌이었다. 물론 감정적으로 증폭시킬 장치들이 없다는 것 자체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의거 전 폭발사고에 따른 다락방 눈물신에서 보듯, 극 중 가장 감정적인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 접근했나?
▲같은 맥락이지만 가장 감정적이기도 하고 가장 절제된 인물이라고도 생각했다. 무수한 독립의거 속에서 젊은 친구들이 산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을 눌렀던 사람으로서, 냉철함을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락방 눈물신만큼은 정말 격정적이었다. 현장 공간구성이나 자세부터 하나하나 고민했던 것과 함께, 그 순간만큼은 다 드러내달라고 했던 감독님의 말을 듣고 몸 안의 수분을 다 털어낼 정도로 여러 번 오열했다. 그렇게 나온 어둠 속 오열신은 나중에 봤을 때도 정말 감정적으로 격한 느낌을 줬다.
-마음에 남는 신이 있다면?
▲모든 걸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 전투신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기차 안에서 3인의 청년들이 가족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좋더라. 그들의 신념이나 독립의 무게감을 잠시 내려놓고, 당시 청년들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생각한다.
-현빈·박정민·조우진·전여빈·이동욱 등과의 현장 에피소드?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었다. 전여빈 배우와는 함께 작품을 많이 했기에, 새로운 만남으로서 든든했다. 또 현빈 배우는 관성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정확한지 고민하면서 깨어있으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방관에 이어 하얼빈까지 연말연시 흥행요정이 됐다. 어떤가?
▲하얼빈도 그렇지만, 소방관 역시 자신의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구하는 희생의 이야기다. 스코어를 떠나서 여러 부침을 거쳐 연말의 여러 힘든 마음들을 다독이며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데 뜻깊다. 매번 흥행요소나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메시지에 주목해서 출연을 결정하는데, 그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 기쁘다.
-'하얼빈'의 메시지?
▲감독님이 촬영에 들어갈 때 이 작품의 메시지로 '용기와 양심'을 말씀주셨는데, 그 '양심'이라는 말이 와닿더라. 비상식의 시대에서 찾아가는 상식과 양심,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가 주는 숭고함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7~8편 이상 작품을 하는데, 어떤가?
▲제게 주어지는 작품들이 너무 소중해서 하나하나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최근 육체적 나이도 한 살씩 먹어가면서 막막함을 느끼는 와중에 '삼식이 삼촌' 때 송강호 선배께 조언을 요청했었다.
“인(忍)해라”라고 하시더라. 잘 조절해가면서 제 삶에 깊이 남은 작품들을 해나가고 싶다.
-실제 나이보다 높은 연령대의 캐릭터를 주로 하는데, 그를 떨치고 싶은 생각은?
▲화면에서 나이들어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한다(웃음). 아마 '이태원 클라쓰' 이후부터 그렇게 잡힌 것 같다. '행복의 나라' 전상두 역을 하면서도 그렇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좋은 것 같다.
-디즈니+ 다작을 해오고 있다. 글로벌 인기체감은?
▲저희 영화와 드라마를 독일쪽 번역으로 소개해주시는 팬분도 계시고, 아랍 팬분들이 소방관 촬영할 때 응원해주시기도 하시더라.
그와 함께, '하얼빈'으로 함께 한 릴리 프랭키(이토 히로부미 역) 배우가 '응답하라1988'을 알고 있고, 다른 해외배우분들도 많이 알아보시더라. 우리 영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새해 계획?
▲넉오프와 러브미를 찍고 있다. 윤세아 배우와 새롭게 호흡하는데, 기대만큼 열심히 잘 해보고 싶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