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47〉AI시대 노동의 종말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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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보자. 1950년 미국 남부 농장주는 농부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 농기계를 구입했다. 일자리를 잃은 농부는 북부로 옮겨 공장 노동자가 됐다. 공장주도 임금인상 대신 생산기계를 도입했다. 그들은 다시 일자리를 잃고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증기기관, 철도, 자동차, 컴퓨터 등 기술은 일자리를 없애는 만큼 신규 일자리를 늘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일자리를 만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기술은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소수 엘리트가 지배했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악화됐다. 그의 해결책은 뭘까.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교육훈련, 기본소득, 사회적 기업에서 찾았다. 그것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위한 기회가 될까. 패배적인 발상이다. 인공지능(AI)시대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사냥, 채집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던 원시시대엔 기술을 발전시킬 여유가 없었다. 정착생활과 농경기술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저장할 수 있게 됐다. 그 대신 농경에 종사하지 않는 잉여인간이 생겼다. 그들은 어떻게 기회를 찾았을까. 학교에서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잉여생산물을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었다. 농경산업을 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가치를 찾았다. 다양성이 생겼고 문명이 발전했다.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기술 연구와 개발에 집중했다. 인간의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하기보다 신체기관을 모방한 도구, 기계,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신체활동을 대체했다. AI는 뭔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대체한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활동을 기계와 AI가 대신한다면 사람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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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 이소연 作

우리는 피땀 흘려 일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을 신성하게 여겼다. 노동이 산업, 시장을 일구고 국가를 발전시켰다. 일하지 않는 것은 타락이고 부도덕이었다. 헌법은 노동이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은 AI시대에 권리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다. AI가 손쉽게 대신할 수 있는 노동을 인간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기존 노동은 취미활동이 되거나 비용을 지불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될지 모른다. 바야흐로 노동의 종말이 오고 있다.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컴퓨터, 스마트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기획, 설계는 미국이 담당하고 생산, 유통은 아시아가 맡아 상생했다. 미국의 기술과 첨단산업은 더욱 앞서갔고 AI까지 만들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도 거세게 추격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기술이 경제를 좌우하면서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AI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인간의 근면, 성실, 자조, 협동은 미덕이 아니다. 일자리를 잃은 인간은 이제 뭘 해야 하는가. 학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디에서 소득을 구할 것인가. 수동적인 보호대상에 그칠 수 없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혁신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AI에게 일자리를 뺏기면 인간의 신체와 정신활동까지 잉여가 되는 시대가 온다. 위기지만 기회다. 직장에 마음과 몸이 묶인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이 갇혀있다. 상사의 지시라면 따라야 한다. 매년 실적에 목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잉여인간은 자유롭다. 혁신주체가 될 수 있다. 낡은 노동에 얽매이지 않으니 새로운 생각을 하고 창의로 혁신할 수 있다. 휘발성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개미의 힘겨운 노동보다 베짱이의 즐거운 노동에 가치를 부여한다. AI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장점을 찾고 활용해야 한다. 신체와 정신활동의 빈 공간에서 생명체만의 고유 '감각'을 일깨우고 집중해보자. 정신, 육체와 감각활동을 융·복합해 새롭고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일자리 상실은 구조적이다. 개인의 잘못이나 실력이 모자란 탓이 아니다. 국가가 예산을 들여 시스템에 의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AI시대는 누구나 창의를 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의 부활은 AI의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하는 국가의 핵심과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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