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원고 마감까지 이제 5시간 남았다. 손가락은 키보드를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지만, 머릿 속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일주일 동안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지 고민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오늘 아침에도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원고 마감이 떠올랐다.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퇴근길에 친구와 통화하며 푸념을 늘어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저녁 자리까지 마치니 새벽 4시가 되더라.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니 하루가 끝나지 않는 것 같아.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구분이 안 가.” 그리고 지금은 목요일 새벽 2시. 나는 원고를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겠지? 요즘 문득 주변 다른 40대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꿈을 쫓는 40대들의 다시 시작하는 용기, 가족을 위해 두 배로 뛰는 워킹맘, 중년의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창업 이야기. 주변에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쏟아진다.
나의 20대는 어땠지? 그때는 마치 무한한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설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그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밤새워 공부하고, 일하고, 놀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은 책임감과 의무감에 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의 나는 자유로웠고, 피곤해도 이겨낼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었다.
이제는 단순한 열정을 넘어, 그 열정을 현실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주거나, 챙취하거나, 나누거나, 뺏기거나, 빼앗거나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40대인 나는 지금도 주변 정리 중이다. 거짓말하는 사람들, 사실에 주관적 생각을 섞어서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 날카롭게 자신의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 사업 제안하는 사람들, 일 좀 하려고 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실제 경험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40대의 미성숙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습관처럼 물어본다.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집에 오는 길에 빵을 사 왔어.” 이 말을 듣고 누군가는 “무단횡단을 했니?”라고 묻는다. “아니, 급한 일이 있어서 가장 짧은 길을 선택했어.” 이렇게 사실과 주관적 이야기가 섞여있는 대화를 하며 생각의 방식과 가치관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한다.
우리의 다양한 경험이 신념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러한 신념은 착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공격적인 사람, 소심한 사람 등 여러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미성숙한 40대가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자해일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찾는 사람,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어쩌면 평생 미성숙한 가치관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삶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분명 나에게 혼란과 갈등을 선물할 것이고, 혼란과 갈등의 연속적인 삶 속에서는 평온과 화합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고 믿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원고 마감까지 남은 시간 동안, 그리고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위해.
함성룡 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C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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