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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동 선익시스템 대표.

“회사의 명운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경쟁사보다 더 큰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중국 BOE에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장비 공급 계약을 처음으로 성사한 선익시스템. 수주 성과를 이끈 결정적 힘을 물었을 때 김혜동 선익시스템 대표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임직원 노력으로 결실을 맺어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선익시스템은 24일 중국 BOE에 증착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2290㎜×2620㎜ 크기의 8.6세대 OLED용 증착기다. 국내에서는 첫 번째, 세계로 따져봐도 두 번째라는 쾌거를 이뤘다. 지금까지 OLED 증착기 시장은 일본 캐논도키가 사실상 독점해왔는데, 국내 기술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념비적 일이다. 김 대표는 “한국 OLED 증착기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선익시스템이 결실을 맺는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20년 동안 OLED 증착기 한 우물을 팠지만, 회사의 노력이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양산용 장비 공급 사례가 많지 않은 탓이다. 2014년 6세대 증착기 개발에 성공하고 2017년 LG디스플레이 양산라인 공급에 성공했지만, 이후로는 연구개발(R&D)용 장비에 주력해왔다.

김 대표는 “6세대 OLED 증착기부터 일본 경쟁사가 업계를 표준화하다시피했다”며 “고객사는 양산 라인이 멈추는 상황을 우려하기에 장비 업체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전환이 보수적인만큼, 선익시스템의 시장 진입에는 어려움이 컸다는 의미다.

선익시스템은 칼을 갈았다. 기술력·원가경쟁력·고객지원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얼라인' 기술을 확보했다. 얼라인은 마스크와 기판을 정밀하게 정렬하는 것으로, OLED 증착기 기술의 핵심이다. 특히 8.6세대는 2미터가 넘는 유리에 유기물 소자를 공차 2마이크로미터(㎛) 이내로 증착해야하는 초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김 대표는 “기술적 진입 장벽 탓에 많은 업체가 OLED 증착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6세대 이상에서는 선익시스템과 일본 경쟁사만 남아 있다”고 부연했다.

독자적인 소재·부품 공급망 관리도 주효했다. 특히 작고 성능이 뛰어난 설비를 제조하기 위한 소재부품 협력사를 확보했다. 증착 장비는 워낙 규모가 크다. 이 때문에 패널 제조사 입장에서도 공간 활용도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김 대표는 “그동안 R&D용 증착기를 공급하면서 고객 요구에 대한 후속 대응 능력도 (이번 수주 과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지금까지는 패널 업체가 요구하면 그때 장비를 만들었지만, 선익시스템은 미리 기술을 확보하고 수주 뒤 고객 요구에 최적화하는 전략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즉 선제적인 기술 확보로, 고객에 필요한 장비 운영의 솔루션을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같은 패러다임 전환이 앞으로 장비 업계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필수라고 강조했다.

8.6세대 OLED는 아직까지 양산 사례가 없다. 현재 설비 투자가 진행되는 단계다. 처음 시도되는 기술인만큼 향후 만족도 높은 고객 지원도 필수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이번 8.6세대 증착장비 수주도 경영진들이 발 벗고 뛰며 선익시스템의 기술 지원 역량을 검증받은 결과다. 김 대표는 “결국 기술·가격경쟁력·기술지원 등 모든 측면에서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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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익시스템 6세대 R&D용 증착장비. 〈사진 선익시스템 제공〉

선익시스템은 내년 증착기를 납품한다. 증착기를 제조할 부지도 확보했다. 김 대표는 “최종 장비는 고객사 맞춤형으로 디자인을 수정하고 제작해 납품하게 된다”며 “중국 현지에서 설치(셋업)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관련 인력도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8.6세대 OLED 증착 장비의 부가가치는 지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OLED가 정보기술(IT) 기기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면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서다. 회사는 8.6세대 증착기 수요가 현재 6세대와 유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선익시스템 입장에서는 신규 고객을 확보할 기회가 여전하다는 의미다.

선익시스템은 올레도스(OLEDoS)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다. 올레도스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손꼽히는데 이미 성과도 가시화했다. 중화권 업체를 대상으로 양산용 올레도스 증착기를 잇따라 수주한 것. 김 대표는 “중국에서 올레도스를 활용하려는 스타트업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며 선익시스템 올레도스 장비를 많이 구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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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익시스템 올레도스(OLEDoS)용 증착장비. 〈사진 선익시스템 제공〉

김 대표는 올해를 8.6세대 OLED와 올레도스 매출 원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기술 고도화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선익시스템은 본사가 있는 경기도 수원에 별도의 공장을 연구개발(R&D)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이 곳에 6세대 R&D용 증착장비와 2세대 증착장비, 올레도스 증착장비를 배치,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챔버와 진공설비 성능 등 세부적인 요소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객 요구사항에 맞춰 실제 OLED 증착기 기술을 테스트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익시스템 전체 기술력을 고도화하는 방식이다.

올레도스 외 선익시스템의 증착기 기술과 얼라인과 같은 요소 기술을 활용, 신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도전만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철학이다.

김 대표는 선익시스템과 같은 사례가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에 확산되길 희망했다. 선익시스템의 양산용 증착기 사업 수주는 결국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계기'라며 이를 통해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가 한층 탄탄해지길 기대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패널사와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대표 생각이다. 특히 국내 패널사들이 적극적으로 국산 장비를 도입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외산 장비 경우 다양한 고객사로부터 기술 검증과 양산 능력을 평가받을 기회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국내 소부장 기업의 글로벌 진출 및 다양한 고객사와의 협력이 없으면, 성장 한계를 직면할 수 밖에 없다”며 “다양한 기회와 경쟁 환경이 갖춰져야 산업 생태계가 견고해질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수원(경기)=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