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이후 반도체는 무어의 법칙에 맞춰 발전해왔다. 전자회로 집적도가 2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법칙은 최근 노광 공정 등 여러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그러나 증가의 개념을 반도체 소자에서 패키지로 확대한다면 무어의 법칙은 그 생명을 이어갈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 평면의 반도체 패키지 개념을 3차원(3D) 적층으로 전환하면 패키지 내에서 회로 특성(집적도)이 두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이종집적 (Heterogeneous Integration)' 패키징 기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2.5D 또는 3D 적층을 실현할 대표 기술이 바로 이종집적이다. 이러한 첨단 패키징 기술은 대만 TSMC가 최초 시도,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 관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TSMC에서 이종집적이 개화한 건 반도체 제조공정의 한계가 도래함을 인정하고, 이를 첨단 패키징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전통적 패키징 기술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칩 설계, 팹 기술과 더불어 반도체 3대 핵심 공정임에도 가격과 품질 외 확실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첨단 패키징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동적으로 대응, 고객에게 제공해야하는 기술 집약적 산업이다. 전례 없던 기회와 성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또한 기존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다. 시스템, 개발 프로세스, 사고 방식 등 전 영역에서 변화와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반도체 패키징과 관련된 사고 전환이 시급하다. 과거에는 개발 기한 내 품질 문제 없이 대량 생산하는 것이 업계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정보기술(IT) 기기 다양화와 첨단 패키징에 대응하려면 미리 움직여야한다. 미리 전기적·기계적, 그리고 열적 특성을 검증해 고품질 제품으로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 로드맵, 즉 IT 제품과 디바이스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야한다. 또 필요한 소재·공정·장비 등 패키징 기술도 사전에 준비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두 번째는 경쟁사와 명확히 차별화된 기술 확보다. 차별화에는 여러 방법이 가능하지만 고객의 제품에 필요한 기술이 우선돼야 한다. 고객 제품에 필요하지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기술은 차별화의 의미가 없다.
기존 패키지가 줄 수 있는 가치는 가격 또는 품질 뿐이었다. 최근에는 IT 제품마다 필요한 패키지 가치가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현재 패키지 가치는 크기·두께·특성 향상(전기·열적)·패키지 융합·가격·품질 등이 있다. 이 중 품질은 기본 고려 사항이며, 가격은 마지막 가치로 판단된다.
따라서 IT 제품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패키지를 선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 가치를 단발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로드맵에 반영, 지속적이고 융합적으로 제공해야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 기술이 된다. 고객이 아닌 나를 위한 차별화는 의미가 반감된다. 이익 증가를 위한 원가절감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경쟁력있는 첨단 패키지를 확보·발전시키려면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이러한 협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기술을 실현한다. 또 기술의 상용화도 가속화할 수 있다. 한국마이크로 전자 및 패키징 학회에서는 주기적으로 포럼 및 학술대회를 개최, 첨단 기술에 대한 산업계와 학계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패키지 산업에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00억원 규모 반도체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R&D) 사업을 기획했다. 첨단 패키징 관련 원천기술 확보와 인력 양성, 국제 협력 사업이 골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다소 늦은 감은 있다. 그럼에도 여러 패키지 전문가가 참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부 정책이 수립되고 실현이 되기를 기대한다.
첨단 패키지는 대기업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대기업도 산업에 필요한 차세대 원천 기술을 적극 공유하고, 관련 산·학·연과 협력해 개발·양산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패키징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꼭 필요한 행보다.
주요 대기업이 기술 로드맵을 제시하고 산·학·연이 리서치 단계 연구를 같이 진행하는 등 각자가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양산화한다면 미래 지향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산·학·연 간 협력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으로 우리는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며, 더 혁신적인 반도체 패키징 솔루션을 개발하고 나아가 종합 반도체 강국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사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장 kmeps@kme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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