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點)은 하찮은 존재다. 위치 말곤 가진 게 없다. 점이 연속되어 위치와 방향을 지니면 선(線)이 된다. 선이 여러 개 모여 평평하게 만든 것은 면(面)이다. 선과 면이 만나 이루는 윤곽선을 따라 형성되는 모양을 형(形)이라고 한다. 그것들을 위로 쌓으면 입체가 된다. 그렇다. 점은 대수롭지 않지만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우주의 탄생도 다르지 않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빅뱅을 지지한다. 우주는 150억년 전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했다. 태초의 점은 높은 온도와 밀도에서 대폭발을 일으키고 팽창해 시공간과 에너지를 만들어 오늘날 우주가 되었다. 우리가 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국 양나라 시절, 장승요가 금릉(난징)에 있는 안락사 벽에 용 2마리를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다그쳤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붓을 들어 용 1마리에 '점'을 찍어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 순간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용이 벽을 걷어차고 하늘로 올라갔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도 소홀하지 않고 핵심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것이 '화룡점정'이다. 점은 시작을 넘어 황홀한 마지막을 만든다.
회화에서 선으로 그리던 것을 매우 짧은 터치로 수없이 점을 찍어 사물을 표현하는 기법이 점묘법이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가 빛을 표현하는 인상주의 기법의 하나로 창안했다. 시안, 마젠타, 옐로, 블랙의 4원색을 이용하여 촘촘하게 수많은 점을 찍어나가면 다양한 색상과 사물을 그려낼 수 있다. 오늘날 문서를 출력할 때 사용하는 프린터의 발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텔레비전 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 역시 같은 원리다. 레드, 그린, 블루의 3원색만으로 점을 찍어나가며 다양한 색상으로 보이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점들 사이에 공백이 있다. 많은 종류의 물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물감을 섞을 필요도 없다. 수많은 점을 찍어서 다양한 색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수많은 점을 촘촘히 찍는 작업은 예술적 감각 외에 집념과 끈기의 '노가다' 작업이 필요하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은 그렇게 완성되고 모든 미술교과서에 얼굴을 내밀었다.
종이 신문은 어떻게 점묘법을 활용했을까. 종이신문에서 삽화, 광고, 사진을 표현하는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잉크가 필요했다. 잉크를 절약하기 위해 점을 촘촘히 찍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점묘법을 사용해 똑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잉크 비용을 줄였다. 작품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화가 로이 리히텐스타인은 점묘법 방식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의 만화 그림을 완성해 팝아트 시대를 열었다.
하찮고 같은 점이 반복되지만 어떻게 찍히고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색감을 가지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와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디지털 시대의 필수재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실리콘(규소)을 중심으로 점과 같은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전류가 흐르고 끊긴다. 그것을 통해 연산 등 정보처리를 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며 인공지능(AI)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 점은 원형(prototype)이다. 사업도 기술도 원형이 중요하다. 창의의 유전자이고 줄기세포다. 인간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다양한 기관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한다. AI 시대의 경제 발전을 위한 창의도 다르지 않다. 핵심적인 원형을 만들고 보존하고 가치를 더할 줄 알아야 한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생성형 AI도 마찬가지다. 초저가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기술도 상용기술 이전에 원천기술을 챙기자.
글로벌 기업이 만든 원형에 기생하여 성과를 내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원형을 만들어 세계경제를 선도하지 못하면 선진국의 문턱은 우리에게 무덤이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