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이호성)이 초과포화 환경에서 물질 결정화 과정을 분자 단위까지 관측하고, 분자 구조 대칭성 변화가 새로운 물질상 형성 원인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연구성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에 4월 게재됐으며 '에디터스 하이라이트'에 선정됐다.
현재 신 우주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우주 환경에 활용되는 신소재를 찾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물질 결정화'에 주목하고 있다. 물질 결정화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면, 입자 배열을 조정해 성능을 높이거나 형성 과정을 제어해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1890년대, 독일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는 과포화 상태 수용액에서 물질이 결정화될 때 안정된 물질상이 아닌 준안정 상태 새로운 물질상이 생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후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이 제시됐는데, 수용액 내 용질 분자 구조 변화가 주된 요인이라는 가설이 유력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선 결정화 과정을 분자 단위까지 관측해야 했다. 수용액의 포화도가 높아질수록 순도 높은 결정이 생기고 잡음 없이 결정화 과정을 측정할 수 있지만, 기존 기술로는 포화 농도의 200% 수준만 구현 가능해 정밀 관측이 어려웠다.
표준연 우주극한측정그룹은 독자 개발한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두 전극 사이에 강한 전압을 걸어 물체를 부양시키는 장치)로 수용액을 공중에 띄운 후 400% 이상 초과포화 상태 구현에 성공했다.
그 결과, 용질의 분자 구조 대칭성이 변하면서 물질의 결정화 경로가 바뀌고 새로운 물질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관측할 수 있었다.
조용찬 선임연구원은 “이번 성과는 새로운 물질상이 생기는 핵심 요인을 규명해 우리가 원하는 물질상을 형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며 “우주 등 극한 환경에 활용되는 신소재 개발과 바이오·의료 분야 신물질 형성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연구진은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를 통해 4000K(3726도) 이상 초고온 환경을 구현하고 내열 소재인 텅스텐(W), 레늄(Re), 오스뮴(Os), 탄탈럼(Ta)의 열물성 정밀 측정에도 성공했다.
우주 발사체, 항공기 엔진, 핵융합로에 사용되는 초고온 내열 소재의 정확한 열물성 값을 제공해 설계의 안전성·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를 이용하면 우주와 유사한 무중력 환경을 구현해 소재 물성을 정밀 측정할 수 있다”며 “현재 선진 항공우주국에서는 위 장치로 우주에서 진행될 다양한 실험을 지상에서 사전 수행해 비용을 절감하고 연구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연구진은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를 기반으로 초고온·초과포화·초고압 극한 환경에서 소재 물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극한소재 통합 측정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