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고준위특별법, 21대 국회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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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특별법) 처리에 어느 정도 뜻을 모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21대 국회 회기 종료를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8년부터 원자력발전을 가동해 현재 25기를 운영 중이지만 사용 후 핵연료 처분 시설을 확보하지 못했다. 1980년대부터 총 9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을 시도했지만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며 모두 무위에 그쳤다.

부지선정 공모와 주민 투표를 거쳐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로 미뤘다.

그사이 원전 내 저장시설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고리원전, 한울원전의 저장시설이 1년 사이로 포화한다.

고준위특별법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꼭 필요하다. 부지 선정 절차와 지역 주민 보상 근거를 담음으로써 그동안 되풀이한 논쟁을 해소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원전이 기저 전원을 역할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하면 꼭 필요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법률안 처리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법안은 이인선,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총 3건으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 번째는 관리시설의 확보 목표 시점 명시 여부다. 여당안은 중간저장시설과 고준위 폐기물 처분시설의 확보 시점을 각각 2050년과 2060년으로 명시했다. 야당안은 고준위 처분시설의 확보 시점만 2060년으로 지정했다.

원전지역의 부지 내 저장시설 영구화 우려 해소를 위해 중간저장시설 확보 시점을 별도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원전 지역 지자체·의회·주민은 지난해 총 8번의 성명서 발표를 통해 고준위특별법에 중간저장시설 확보 시점을 명확히 담을 것을 촉구했다.

두 번째는 원전 부지 내 건식 저장시설의 용량이다. 여당은 원자로 운영 허가 기간의 발생 예측량, 야당은 원자로의 '설계수명(최초 운영허가기간) 중 발생 예측량으로 용량을 규정했다. 여당은 원전 계속 운전을 염두에 뒀고 야당은 허용하지 않겠다며 대립했다.

고준위특별법의 핵심이 원전 밖에 설치되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 등이라는 점에서 여야의 대립 지점은 사실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고준위 방폐장을 확보한 나라 중 근거 법률안에 원전 내 건식 저장 시설의 용량을 규정한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 이를 잘 나타낸다. 어찌 보면 쟁점 아닌 쟁점이 법률안 처리를 가로막았던 셈이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입법에 근접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시 하는 여야의 협상은 언제든 파행으로 흐를 수 있다.

합의에 실패하면 후폭풍도 클 수밖에 없다. 과거 9차례 방폐장 부지선정 실패 때마다 되풀이된 사회적 갈등을 다시 겪어야 한다.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에 따른 원전 정지 가능성도 커진다.

처분 부지에 중간저장시설도 건설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원전 내 저장시설의 영구화 우려가 커지고 지역 주민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원전운영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이미지 실추도 피할 수 없다.

21대 국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고준위특별법 처리를 회기 안에 마쳐야 한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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