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38〉AI 시대의 '몸': 망각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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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작년 7월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 삶에서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망각이라는 개념이 인공지능(AI) 학습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학습과 기억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점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AI가 우리의 신체적, 인지적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첨단 AI 시스템을 구동하는 인공 신경망은 인간 두뇌의 복잡한 뉴런 네트워크를 반영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무작위로 보이는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으로 시작해 학습을 통해 데이터의 흐름을 개선해 성능과 이해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컴퓨팅 리소스를 많이 필요로 하기에 중간에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과정 전체를 재시작해야 하는 비효율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선택적 망각의 접근은 학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주요 정보를 지움으로 인해 전반적 컴퓨팅 파워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망각이 결함이 아닌 효율성과 적응력을 높여주는 기능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 시대 우리의 인체는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부터 인지 능력을 확장하는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기술과 연결되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산다. 누군가의 삶의 순간을 지켜보는 기회가 콘텐츠라 명명되고, 디지털 플랫폼 내 개인의 많은 것을 기록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무한히 기록된 많은 개인의 정보가 역으로 부담이 되거나 지우고 싶으나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기도 해 새로운 기억의 체계를 구축하게 만들기도 함을 우리는 인지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은 전례 없는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지만 정신적, 육체적 웰빙에 있어 도전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망각의 개념은 이러한 디지털 과부하를 관리하고 매일 접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우선순위를 정하고 처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뇌과학의 입장에서 망각은 우리의 기억 체계가 지닌 하나의 결함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과학적 견해다. 뇌과학자에게 망각은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신경생물학, 컴퓨터과학의 관점에서 망각은 정상 과정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능력, 창의력, 정서적 행복과 사회적 건강에 이롭다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그의 저서 '망각과 자유'에서 망각을 일종의 백치상태나, 단순한 기억력 저하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망각은 과거에 머물고자 하는 인간에게 있어 일종의 초월하려는 능동적 힘, 치열한 투쟁의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의 관점에서 망각은 상실이 아니라 행복과 희망,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집요할 정도로 자기중심적 존재이기에 비움의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타자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때문에 망각은 오히려 강건한 건강의 또 하나의 형식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AI가 일상에 통합되면서 우리는 더욱 더 다양한 측면에서 신체와의 관계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AI 시스템의 망각의 효율성과 인간의 인지에 대한 이점 사이의 유사성은 기술이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풍경을 재편하는 미묘한 방식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AI를 만드는 과학적 분야에서는 망각의 역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혁신의 과정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망각의 개념과 역할, 이해를 제공했던 우리의 신체에게는 이같은 망각의 역설을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질문이 필요해 보인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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