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과학기술 R&D, 글로벌 협력 생태계 갖춰야

역사는 뒤처진 문명이 앞선 문명을 따라잡으며, 쇠락과 번영의 교차 속에 발전해 왔다.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20세기에는 미국이 역사의 중심에 섰다. 역사의 변방에서 시대의 물줄기를 바꿨던 러시아 표트르 황제의 개혁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앞선 모델 따라잡기를 위한 국가 총력전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그 중심엔 과학기술이 있다. 전통 산업에서 미래 첨단 산업까지 추격자와 선도자간 총성 없는 기술경쟁은 패권, 안보의 개념으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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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표트르와 메이지표 방향에 속도까지 더한 광속의 과학기술 기반 추격 전략을 전개했다. 하지만, 추격과 추월을 넘어 초격차까지 외치던 일부 주력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글로벌 선도기업과 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소·부·장 등 중소기업 중심 기반산업은 굳건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대비 저성과를 빗댄 '코리아 R&D 패러독스', 'R&D 카르텔' 논란도 국가 혁신전략에 근원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최근 글로벌 R&D 협력이 과학기술 시스템 혁신 방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의 기술 축적 역사는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의 과정이었다. 미국 존슨 대통령 과학 고문 호닉 박사의 진두 지휘 아래 바텔연구소를 모델로 설립한 KIST가 시작이었다. 당시 애국심에 호소해 영입한 해외 한인 과학자는 선진국과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격차를 이어주는 변압기였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공개한 국가혁신역량평가에서 우리나라 국제공동연구 지수는 OECD 36개국 중 34위, 바닥권으로 나타났다. 우리 과학기술의 글로벌 DNA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한국형'이라는 논리에 갇혀 갈라파고스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달라진 수준만큼 글로벌 R&D 협력도 변해야 한다. 글로벌 인재 활용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저출생 여파로 과학기술 인재 풀이 급감하는 현실에서 글로벌 인재 활용없이 과학기술의 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세계 인재들이 대한민국으로 모여 꿈을 펼치도록 정책과 제도로 길을 터줘야 한다.

글로벌 R&D 협력의 길잡이는 인적 네트워크가 아니고 데이터다. 논문특허 등 공개된 데이터만으로도 글로벌 선도그룹과 핵심인재 파악이 가능한 시대다. 부족함을 채워줄 파트너를 찾고, 상호보완적 역량을 확인하는 것이 협력의 시작이다. 서로의 이해를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 로드맵이 필수다.

글로벌 R&D 협력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선진국 기술도입, 후발국 생산거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유효하지 않다. 신흥시장은 생산기지를 넘어 R&D를 포함한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술협력 기반의 한국형 혁신생태계 구축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과학기술 지평을 넓히는 길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연계된 기술협력은 앞으로 20~30년간 펼쳐질 지구촌 탄소중립 실현 과정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 것이다.

글로벌 R&D 협력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전 세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인재들의 꿈과 열정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가 되는 이노베이션 코리아호의 힘찬 도약을 기대해 본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yisanghyup@nig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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