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연계·공동투자형 中企 R&D 복원 시급 “수요처 확보, 가치사슬 복원해야”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이 가장 시급한 분야는 이미 수요처가 정해진 상용화 과제다. 수요처 구매를 조건으로 수행하는 사업, 대기업과 공동 R&D기금을 마련해 장기적인 협력 모델을 만드는 사업 등 중소기업 자립을 지원하는 실질적 성과가 나오는 과제마저도 'R&D카르텔, 나눠먹기'로 치부돼 예산이 일괄 삭감됐다.

예산이 삭감된 대표적인 사업은 중소기업상용화기술개발 R&D 사업이다. 이 사업은 가치사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요처와 협업해 실제 필요한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한다. 수요처 구매 수요가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공공기관, 대·중견기업 등 투자기업 투자확약을 받은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R&D를 추진한다.

이미 판로를 확보한 만큼 성과도 좋다. 중소기업과 협업을 원하는 국내 수요처는 지난해 기준으로 1500개사를 넘었다. 해외 수요처 역시 100~200개 안팎으로 지속 발굴되고 있다. 2021년 기준과제 당 매출도 평균 28억원 수준이다. 신규 고용 효과는 16.4명, 수출액도 21억원 안팎이다. 개별 과제마다 최대 연 5억~6억원 안팎의 정부 출연이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다.

공동투자형 과제도 마찬가지다. 이 과제는 정부가 출연한 금액에 따라 협력 대·중견기업이 공동으로 투자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조성된 투자협약기금만도 875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정부 출연금이 집행되지 않을 경우 기금에서 협약한 금액도 매칭되지 않는다. 이미 수요처가 정해진 과제조차도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종료가 불가능해 지는 셈이다.

구매연계형 기준으로 약 880개 과제, 공동투자형은 158개 과제가 내년 계속사업 예산을 3개월 정도 밖에 편성받지 못했다.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소특회계)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협약대로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행정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 당초 예정된 민간 투자도 이뤄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에 예산이 삭감된 중소기업 R&D 사업 다수가 '나눠먹기'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운게 사실이다. 중기부 전체 R&D 사업의 사업화 성공률은 50%를 간신히 넘는다. 사업화가 됐더라도 실질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중소기업계 다수의 평가다. 하지만 이미 판로가 확보됐고, 가치사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과제까지도 덩달아 예산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은 문제다.

예산 심사 과정의 석연찮은 절차를 고려하더라도 여타 과제와 차별화하지 못한 중소벤처기업부 책임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민간이 먼저 투자하고 심사를 통과한 경우에 R&D 자금을 투입하는 팁스(TIPS) 프로그램은 R&D 예산 전반이 삭감되는 과정에서도 오히려 증액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기부 대응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액셀러레이터 등 민간이 투자하고 정부 R&D 자금을 지원하는 팁스 프로그램은 내년 R&D 예산이 올해 대비 약 20% 증액 편성됐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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