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E&S가 저탄소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에 나선다. LNG 생산, 활용 발생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를 모두 포집·저장하는 것으로 화석연료 활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목표다. 탄소·포집·저장(CCS)은 세계가 주목하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국내 기업이 화석연료 개발에 접목·상용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 E&S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호주 다윈 LNG 터미널을 찾아 CCS 기반의 저탄소 LNG 개발 사업 현황을 들여다 봤다.
◇SK E&S, '다윈 LNG 터미널'서 본격 저탄소 LNG 생산
호주 북준주 소재 '다윈 LNG터미널'을 찾은 지난 16일(현지시간). 귀마개를 하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 곳곳에서 울려 펴졌다.
60만평 부지에 자리를 잡은 이곳은 천연가스 생산을 지난 2006년 지어졌다. 호주 최대 민간 자원개발 기업 산토스가 운영중이다. 연간 천연가스 처리량은 총 370만톤으로 액화·운송 등 주요 공정 시설이 모두 포진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던 중 땅속에서 올라온 은색의 굵은 파이프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지름 66㎝의 이 설비는 다윈 터미널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500㎞ 떨어진 해상 가스전 '바유 운단'에서 채취한 천연가스가 파이프라인을 따라 여기까지 안전하게 이동한다.
리차드 힝클리 산토스 청정 에너지 및 CCS 개발 총괄 담당이사는 “바닷속을 따라 이어진 파이프 라인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첫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두개의 하얀색 탑이 있다. 바유 운단 가스전에서 이곳까지 이동한 가스는 불순물 제거, 액화 등 과정을 거쳐 LNG운반선을 통해 외부로 나간다. 불순물중엔 CO₂도 있다. 바유 운단 가스의 CO₂ 함유량은 6%인데 이 탑에서 아민계 흡수제에 의해 흡착, 제거한다.
힝클리 이사는 “아직은 CCS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하기 전으로 현재는 포집한 CO₂를 추가 처리해 대기중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유 운단 가스전의 생산이 올해로 종료되면 이곳은 CCS 기반의 '저탄소 LNG 수출 허브'로 변신한다.
2025년 상업 생산을 시작하는 다윈시 북서부 해상 바로사 가스전의 천연가스 또한 다윈 터미널에서 최종 생산된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의 CO₂ 함유량은 18%인데 CCS를 통해 전량 처리할 계획이다.
저장고는 바유 운단 가스전이다. 2년 후면 폐가스전이 돼 있을 바유 운단 가스전은 CO₂를 영구 격리할 최적지다. 해저 2㎞ 지점에 위치한 가스전의 총 CO₂ 저장 용량은 1000만톤 이상이다.
이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SK E&S가 참여한다. 지난 2020년 산토스로부터 다윈 LNG 프로젝트 지분 25%을 인수함에 따라 바유운단 가스전 및 LNG터미널 사이에 연결된 파이프라인, 다윈 LNG 액화플랜트 지분을 각각 25%씩 확보했다.
사업이 가능했던데는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바유 운단, 바로사 가스전의 생산이 모두 다윈 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인프라를 재활용수 있게 됐고 CCS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
터미널과 바유 운단 가스전을 잇는 파이프라인 재활용이 대표적이다. 기존과 반대로 터미널에서 바유 운단 가스전으로 CO₂가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신규 배관을 새로 만들지 않게 됨으로써 CCS 경제성은 배가 됐다. 6% CO₂ 제거설비가 이미 있어 추가로 12% 제거 설비만 짓게 된 것도 경제성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신규 CO₂ 포집 설비는 멤브레인 방식으로 보다 많은 양의 CO₂를 포집할 수 있다.
바유운단 가스전을 CO₂ 저장 플랜트로 전환하기 위한 기본설계(FEED)작업은 지난해 말 완료됐다. 올해 중 바유운단 가스전의 생산이 완전히 끝나면 바로사 사업의 준비엔 더욱 속도가 난다. 바유 운단처럼 고갈 가스전을 CO₂ 저장 플랜트로 활용할 경우 20년 이상 천연가스 시추 과정에서 축적된 지정학적 데이터와 분석 결과물이 있어 CO₂ 주입과 관리가 훨씬 용이하다.
◇자원개발 새 패러다임 제시 '환경 부담 우려 완전 불식'
바로사 가스전 개발 사업은 SK E&S, 나아가 SK 그룹 전체 넷제로 비전 달성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SK E&S는 10여 년 전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참여해 현재까지 누적 총 1조5000억원의 투자를 진행했다. 현재 전체 공정율은 60%를 넘어섰다.
SK그룹의 '넷제로' 비전에 따라 바로사 사업 또한 탄소배출 저감에 초점을 맞췄다. 당장의 이익을 쫓기 보다는 탄소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해외자원개발 모델 발굴에 주력했다.
SK E&S는 바로사 가스전의 천연가스 생산, 유통, 활용 단계 즉 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CO₂를 전량 포집한다. 바로사 천연가스에 포함된 18%의 CO₂는 연간 200만톤으로 이를 바유 운단 가스전에 저장하는 것은 몰론 액화·운송·재기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CO₂ 배출권 구매 등을 통해 상쇄시켜 궁극적으로 탄소중립 LNG를 국내로 들여온다는 구상이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한 저탄소 LNG는 국내에서 대부분 청정수소 생산 원료로 활용된다. SK E&S는 충남 보령LNG터미널 인근 지역에 들어설 블루수소 플랜트에서 오는 2026년부터 연간 25만톤의 블루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CO₂ 역시 포집 후 전용 수송선을 통해 바유 운단 가스전으로 보내 영구 저장할 계획이다.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환경 부담' 문제가 말끔히 사라진다. 앞서 일부 급진 환경단체는 바로사 LNG 사업에서 최대 1000만톤이 넘는 CO₂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SK E&S가 국내로 들여온 LNG를 발전에 활용한다고 가정하고 산출한 배출량이다.
SK E&S는 CCS 기반 LNG 개발프로젝트와 블루 수소 생산이라는 대안으로 총 CO₂ 발생량을 300만톤 수준으로 낮췄다. 이마저도 CCS를 통해 대기 배출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바로사 프로젝트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우리나라로 도입 예정인 LNG는 연평균 약 130만톤으로 이는 국내 전체 소비량의 3%에 달한다.
해외자원개발을 통해 직접 가스전에 투자하고 생산된 가스를 도입하는 비중(자주개발율)은 지난해 기준 5%에 그치지만 바로사 가스전 물량이 확보되면 이 비율이 1.5배 상승할 정도로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에 달하는 일본도 바로사 가스전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일본의 석유 및 가스 자주개발율은 한국의 8배 수준인 40%에 달한다. 한국이 앞으로도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 자원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CCS 기반 자원 개발 모델 확립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SK E&S 관계자는 “바로사 가스전 개발로 국제 에너지 시장 변동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가스를 들여올 수 있게 된다”면서 “국제정세로 인해 가스가격 폭동 시 국내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통해 국민 전기료, 난방요금 부담 완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령 블루수소 플랜트는 세계 최대 규모로 추진하는 청정수소 프로젝트”라며 “국내에서 자체 청정수소 생산·조달이 가능해져 탄소중립 달성과 국내 에너지 자급률을 올리는 동시에 대규모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호주 연방 정부 “CCS 규제 확실성 제공...韓 등 적극 지원 약속”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한 호주 북준주, 연방 정부의 관심도 크다. 최근 호주 연방 정부는 온실가스 다배출 시설의 감축 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세이프가드 매커니즘' 개정안을 시행했다. 바로사 LNG 사업은 호주의 강화된 환경 규제에 맞춰 진행하는 대표 사례다.
연방 정부는 바로사 LNG 사업을 국부의 핵심인 천연가스 개발과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글로벌 패러다임을 동시에 만족하는 모델로 보고 있다.
북준주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 그린 수소 생산, 넷제로 천연가스 생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에너지·환경 정책과 인프라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여기엔 4GW 이상의 태양광 발전 개발과 1000만톤의 이상의 그린 수소 생산 계획이 포함된다. 바로사 가스전을 기반으로 SK E&S 등 한국 기업과의 새로운 협력 모델이 추가로 이어질 공산 또한 크다.
호주 연방정부 관계자는 “호주는 한국과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파트너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라면서 “호주는 세계 최고의 태양 에너지 자원, 풍부한 바람,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과 같은 주요 광물도 보유하고 있어 한국 등 주요 파트너의 에너지 전환 해결책을 찾는데 필요한 이상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나아가 녹색 수소 생산은 호주의 우선 과제로 한국의 기술을 활용해 호주의 수소 산업을 구축하고 한국의 거대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켜 제조업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수소, 그린 스틸, 태양광에 대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논의도 진전할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크리스 보웬 호주 기후변화·에너지부 장관은 “호주 정부는 CCS에 대한 규제 확실성을 제공한다”면서 “CCS가 에너지 전환의 일부로서, 특히 감축이 어려운 부문에서 탄소를 감축하는 역할을 인지하고 있고 이것이 호주 정부가 관련 산업을 지원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