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철근 누락 부실시공 아파트와 관련해 설계·감리 담합과 부당 하도급거래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LH 단지 설계·감리의 경우 입찰을 통해 계약 당사자가 정해지므로 입찰 담합 여부를 들여다 본다는 취지다. LH는 검단자이 주차장 붕괴 후속 조치로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했다. 설계·심사·계약·시공·자재·감리 등 건설공사 과정에서 입찰담합을 적발해 LH 출신 퇴직관료(전관) 영입에 의한 불공정 카르텔을 근절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사전적격심사(PQ) 제도의 근본적 변화없이 공공입찰 시장에서 과연 전관 영입을 포기하는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감리업계가 전관을 보유할 수 밖에 없는 것은 PQ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LH 단지설계의 경우 LH 출신이 아니면 PQ에서 사업책임기술자(사책)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LH가 추진 중인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나 '공공분야 입찰담합 예방 자율 개선방안' 등 자구책은 무위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최근 '순살아파트'로 LH가 논란이지만 설계·감리 업계에 전관예우는 발주처 전반에 걸쳐 퍼져있다. 당장 공정위에 적발된 입찰담합 사건만 추려도 LH가 발주한 '임대주택 화재보험'부터 △한국철도공사·국가철도공단의 '철도 차량·침목' △한국전력공사 '맨홀 뚜껑' △한국가스공사 '액화천연가스(LNG) 탱크·강관' △한국수자원공사 '수도관 입찰' △한국수력원자력·한국석유공사 '지진관측장비' △한국도로공사 '도로 유지보수 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특장차' 등 나열조차 힘들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공분야 입찰담합 관여행위 개선방안 선포식'을 열고 “공정위가 최근 3년간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사건 2건 중 1건이 공공분야 입찰담합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발주처 전관을 영입한 설계·감리업체에 입찰정보를 사전 유출하는 등의 임직원 관여행위가 입찰담합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한준 LH 사장을 비롯한 14개 공공기관장은 “자율 개선방안을 통해 공공분야 입찰담합 예방 도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관 공화국에서 발주처의 자율 개선방안만으로 전관영입 카르텔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PQ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한다. 민간 출신 엔지니어가 학력·자격·경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LH 출신 전관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에 그칠 것이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