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남탓'보다는 타산지석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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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이르면 5월 초 시행될 전망이다. 27일 정부와 여당이 발의한 법안은 기존 발의된 야당 법안들과 함께 1일 병합 심사를 거쳐 2일 국토위 전체회의, 5월 초 본회의 통과될 예정이다.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특별법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비현실적이라고 아우성이다. 야당과 피해자들은 여전히 채권매입을 통한 '선 구제 후 회수'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기 피해 금액을 국가가 대납해주는 제도는 수많은 사기 유형에 적용할 수 없다”면서 보증금 직접 지급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특별법을 두고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 관련 대란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세 보증금이 치솟았던 2021년 6월 이후 계약했던 전세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2차, 3차 뇌관이 터질 것을 우려한다.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정부와 당정의 지난 정부 비판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가 지난 정부 주택 정책 실패로 야기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규제 위주의 정책과 저금리가 당시 전세 수요를 폭증시켰고 전세 보증금과 전세가율의 상승을 가져온 것이 현재 피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 정책 실패 탓만으로는 전세사기 대란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전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이미 대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지난 정부 탓으로 돌린다고 지지율이 높아진다든가, 피해자들이 지난 정부의 대통령이나 장관을 찾아 따질 것 같지도 않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2차, 3차 대란을 막을 것인지다. 이를 위해 지난 정부의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타산지석으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근간으로 하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서 나타날 부작용 가능성 우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임대차 3법 이후 당장 전세 매물이 사라지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2년 후 또는 4년 후에는 오히려 안정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계속되는 규제를 비판하는 기자들의 지적에 당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10년만 하면 부동산은 확실하게 안정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은 듯했다.

이런 점을 비판하는 현 정부라고 달라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전세사기범을 잡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1만4000여건 수사 중 168명 구속에 그쳤다. 전세사기인지 사고인지 조차 가늠이 가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사기' 용어를 남발했다. 대대적인 발표에 정부의 적극적 행동을 기대했던 피해자들은 희망고문이었다고 울상이다. 전세사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전세를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임차인이 계약 만료로 나가고자 해도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전세 사고 위기에 처한 곳이 비일비재하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정부와 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할 한정적인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은 한시법으로 마련했다. 들불처럼 번질 역전세와 전세사고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임차인뿐만 아니라 임대인까지 정부 지원을 호소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일도 벌어질 만한 일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전 정부 탓은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됐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국토교통부도 관행혁신위원회를 꾸려 '빚내서 집사라' 정책이 문제였다고 자아비판부터 했다. 억울한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 책임을 지겠다고 해서 국민이 선택한 정부다. 문제 앞에서 탓보다는 타산지석의 지혜를 얻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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