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전기차 가격 전쟁과 생존 전략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구매 심리가 위축되자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을 일제히 내렸다. 전기차 시장에서 초기 성패의 관건이 제품력과 규모의 경제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차량을 공급하는가에 승부가 달렸다.

가격 인하를 주도한 업체는 세계 전기차 점유율 1위 테슬라다. 테슬라는 올해 초부터 수요 위축을 이유로 최대 시장 중국을 비롯해 미국, 한국, 일본, 호주 등에서 공격적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중국에서 모델3와 모델Y 가격을 최대 13.5% 인하하면서 모델Y가 미국보다 43%나 저렴해졌다. 한국에서도 주요 모델 가격을 약 12% 내렸다. 일본에서는 10% 내렸다. 호주에서도 가격을 낮췄다.

테슬라가 미국에서 가격을 모델별로 최대 20%까지 낮추자 포드가 머스탱 마하-E 가격을 최대 8.8% 인하하는 등 가격 경쟁의 막이 오른 분위기다. 현지 언론은 포드의 가격 인하가 테슬라 행보에 대응하려는 조치라고 해석했다.

테슬라의 속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판매 부진에서의 탈피 외에 리비안 등 새롭게 떠오르는 경쟁업체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 숨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격을 인상하던 테슬라가 꾸준한 원가 절감, 안정적 공급망 확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해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세계 가격의 기준점이 되는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앞으로 제조업체 간 치열한 가격 전쟁을 예고했다. 미국을 주력 시장으로 둔 현대차그룹의 부담도 갈수록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는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가장 큰 경쟁 상대다.

곧 미국 판매를 시작할 현대차 아이오닉6는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 테슬라 동급 모델보다 실제 구매 가격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에서 생산·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경쟁업체의 가격 인하까지 한국산 전기차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수요가 늘어날 것은 명확하지만 셈법은 복잡해진다.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결국 전기차 원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안정적 공급망과 효율적인 자체 생산 체계를 갖춰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전문가 의견이 모인다.

다행인 것은 한국이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완성차와 부품·배터리 제조업체를 모두 보유한 국가라는 점이다.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공동 연구개발(R&D)에 나서는 등 합종연횡으로 신규 투자비를 줄일 수 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의 효율적 공급망을 갖춘다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뿌리를 맡아 온 중소 부품사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가 전기차 부품 공급사로 전환하려는 중소기업의 R&D 투자와 지원책 마련에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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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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