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등 여파로 기업가치 급락
성장 담보 공격적 자금운용 난항
2월 투자금액 75%↓ '곤두박질'
모태펀드 추가 '안전 신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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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스타트업 투자시장 혹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스타트업 '돈줄'인 실리콘밸리은행그룹(SVB) 파산 악재가 덮쳤다. 미국 정부가 SVB 예금 전액을 보증하는 등 초기 진화에 나선 데다 한국 스타트업과 접점이 적어 국내 여파는 제한적일 거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가뜩이나 얼어붙은 스타트업 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3일 벤처캐피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유관기관을 통해 SVB 파산에 따른 피해사례 파악에 나섰다. 미국 현지에 법인을 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SVB은행에 예금을 예치하거나 대출한 현황을 중심으로 점검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SVB 파산 사태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미국 현지에 법인을 둔 기업이 많지 않은데다 미국 진출 스타트업 다수는 진출 이후에도 대부분 국내에서 주요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서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글로벌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 포트폴리오사 월급 지급 등 문제를 다른 금융기관을 통해 모두 해결했다”면서 SVB 파산에 따른 단기 유동성 문제를 해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은 투자심리 위축이다. 가뜩이나 벤처·스타트업 투자시장이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투자심리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SVB그룹 자회사인 SVB은행은 여타 시중은행과 달리 벤처대출로 기업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사다. 실리콘밸리 지역 벤처기업과 임직원에게 예·적금을 수취하면서 무담보 형태로 대출을 공급한다. 향후 지분투자로 유치한 자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문제는 SVB은행의 벤처대출이 단지 벤처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SVB은행 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PE)다. 2021년 말 기준으로 SVB은행 순대출에서 VC·PE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이른다. 또 다른 자회사인 SVB캐피털을 통해 세콰이어캐피털 등 미국 실리콘밸리 내 주요 VC에 출자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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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SVB 예금 전액을 보전한다는 조치를 빠르게 내렸지만 자금운용 전략은 자연스레 바뀔 수밖에 없다. 고금리 등의 여파로 기업가치 급락을 겪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벤처기업 성장을 담보로 한 공격적인 자금운용은 이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내 벤처생태계 투자심리에도 자연스레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벤처생태계에서 대규모 투자는 주로 글로벌 VC 또는 외국계 출자자(LP)를 확보한 대형펀드를 통해 이뤄진다. 유동성이 감소한 외국계 VC를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투자를 줄이거나 당초 약정한 펀드 출자금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SVB그룹뿐만 아니라 여타 상업은행 역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출자에 보수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장 스타트업에 미칠 영향보다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벤처투자 시장 냉각기가 더욱 길어질 것이 우려된다”면서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관망기가 더욱 길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국내 벤처·스타트업 관련 각종 투자지표가 곤두박질 치는 현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발표한 2월 스타트업 투자 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월 총 투자금액은 2952억원으로 전년 동월(1조1916억원)과 비교해 75%(8964억원)가량 감소했다. 투자 건수 역시 전년 동월 140건에서 92건으로 48건이나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관측하는 분위기다.


윤건수 벤처캐피탈협회장은 “당장 국내 스타트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테지만, 글로벌 단위의 투자심리 위축이 국내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모태펀드 추가 공급 등 우리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하루 빨리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