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C 해외 의존도 80%…LS일렉트릭, 국산화 뚝심

프로그래밍 제어장치 핵심 장비
日 국내 점유율 40% 압도적
LS일렉트릭, 현대차 납풍 성과
정부 주도 밸류체인 구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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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일렉트릭 관계자가 인도네시아 현대차 공장 제조 공정에 구축된 자동화 솔루션으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LS일렉트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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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용 배터리와 완성차 등 국내 대표 산업 자동화 설비에 적용되는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가 외산에 잠식 당했다. PLC는 '사람 두뇌'에 비유될 만큼 자동화 설비 핵심 기기로 꼽힌다. 현재 일본 등 외산 PLC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PLC는 늘어난 수요 탓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납품까지 1년이 넘게 걸리고 있다. PLC를 외산에 전적 의존해서는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 산업 기반이 셧다운 등에 노출돼 취약해질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기업 가운데선 LS일렉트릭이 PLC 국산화에 성공해 현대차 제조 라인에 적용했지만, 점유율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산 PLC 비중을 높이기 위한 기업 간 협력과 함께 국가 차원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PLC, 외산에 잠식…납기는 1년 훌쩍

PLC는 프로그래밍 제어장치를 의미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기계 장치를 정해진 순서, 조건에 따라 동작하게 하는 자동화 시스템의 핵심 제품이다. 장비 운영에 필요한 각종 센서와 서보·모션, 인버터 등 구동과 제어를 판단해 장비를 움직인다. 특히 공장에서 운영되는 모든 제어 관련 데이터를 취합 및 생산하는 1차 지점으로, 4차 산업혁명 핵심인 스마트 공장 근간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라인 설비 담당자들은 설비 도입에 앞서 가장 먼저 PLC 스펙을 선정한다”면서 “그만큼 PLC는 대부분 장비와 연동돼 동작을 제어하는 핵심 기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PLC는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외산에 절대 의존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장 제조 및 프로세스 자동화 시장에서 PLC 등 핵심 자동화 장비의 외산 점유율은 80%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일본 기업이 절반에 육박하는 4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내에서 자동화 분야 투자가 활발하던 지난 2017년에는 총 투자액 약 1조5000억원 가운데 상당액을 야스카와와 오므론,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이 수주했다.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 자동화 분야 시장을 장악했다. 매출 및 시장 점유율 기준 상위 5개 기업 가운데 3개사가 야스카와와 오므론, 미쓰비시다. 특히 미쓰비시는 PLC 점유율이 42%로 압도적이다. 세계적인 전기·전자 업체인 독일 지멘스가 13% 점유율을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일본 기업은 하이엔드인 대기업 중심 자동화 설비 시장에서도 과반에 가까운 물량을 싹쓸이했다. 국내 하이엔드 자동화 설비 시장은 지난 2017년 기준 약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일본 기업이 약 48%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PLC와 서보·모션만 놓고 보면 각각 점유율이 53%, 62%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일본 제품 편중이 심화되는 셈이다.

최근 들어 PLC 납기는 길어졌다. 평상시에는 6개월이 걸렸지만 현재는 배 이상 늘었다.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하는 실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차 배터리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수요 등이 급증하면서 PLC 수요가 몰린 결과로 해석된다. 일부에서는 웃돈을 얹어 PLC 추가 생산 및 납품을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13대 주력 산업군 가운데 자동차,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제조 라인에는 PLC가 필수다. PLC 조달에 애로를 겪을 경우 제조 라인 셧다운 등 주력 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납기가 기존 대비 3배 이상 늘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라면서 “테슬라,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를 대거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심각한 PLC 공급 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PLC 공급망 다각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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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일렉트릭, PLC 국산화…전략 지원은 요원

PLC 등 핵심 자동화 장비를 국내 기업이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LS그룹 핵심 계열사인 LS일렉트릭이 PLC와 서보, 인보터 등 핵심 자동화 장비를 국산화했고, 세계적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 광주 GGM 공장에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공장 구축 당시부터 사용한 외산 자동화 장비들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현대차는 GGM 공장에 적용할 자동화 설비를 입찰에 부쳤고, LS일렉트릭이 일본 등 외산 메이커 3곳과 경쟁해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는 정교한 공정 기술이 필요한 자동차 라인 특성상 품질이 뛰어난 국산 자동화 솔루션이라도 전격 교체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국내 기업으로서 언제, 어떻게든 고객에 맞춤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차별점이 주효했고, 실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공사 일정 차질에도 불구, 양산 일정에 맞춰 라인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GGM 공장에 적용된 LS일렉트릭 핵심 자동화 설비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S일렉트릭의 핵심 자동화 장비 기술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PLC, 서보, 인버터 등 일반 제어 부문 국내 기술력은 일본산과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면서 “모션 및 정밀 제어 부문 기술력만 더 강화된다면 외산과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LS일렉트릭이 자동화 설비를 현대차 제조 공정에 납품한 것은 순수 국내 기업들이 장비 분야에서 국산화에 협업한 상징 사례”라면서 “장비 업계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력에도 국내에서 LS일렉트릭의 자동화 설비 공급 실적은 미미하다.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철강, 이차전지 등 대부분 산업이 초기에 일본 기술 기반 생산 설비를 채택했기 때문에 비용 효율화 등 측면에서 일본산 자동화 장비를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대기업 협력사들의 경우에도 납기 시간 단축이 중요하기 때문에 외산을 국산으로 교체할 필요성이 작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 현장 대다수에서 일본산 생산 설비가 쓰이고 있어 보다 친숙한 일본산 자동화 설비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래도 유지·보수하거나 관리하는데도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적었던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기존에 정부는 자동화 설비 관련 국책 사업 추진이나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미온적이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산 제품 보급화가 빨라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제라도 전향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자동화 설비 국산화 및 비중 확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스마트 공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올해까지 스마트 공장 3만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인데, PLC 등 핵심 자동화 장비가 외산으로 채워질 경우 기술 종속이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국산화율이 높아지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만 우리 기술로 스마트 공장 완성도를 높이고, 강건한 밸류체인을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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