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난방비 '진퇴양난'

8만6770원. 집에 도착한 2월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에 적힌 액수다. 지난달 요금의 두 배에 가깝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40% 넘는 2만5000원 이상 올랐다. 요금 부과 기간은 1월 17일까지로, 영하 16도에 이르는 맹렬한 추위가 이어진 설 연휴 후반부터의 난방비는 계산되지도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가스요금을 인상하면서 예고된 것이었지만 고지서를 직접 받는 순간 체감하는 충격은 컸다.

Photo Image
2월 도시가스 지로통지서.

겨울철 한파 속에서 최근 오른 가스 가격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정부는 억눌러 오던 가스요금을 지난해 4월, 5월, 7월, 9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주택용 가스요금의 경우 기존 요금의 38% 수준인 메가줄당 5.47원을 인상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난방비 폭탄'을 두고 책임공방이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난방비 지원 규모가 부족하다며 공세를 전개한 반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가격 인상을 억눌러 온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세계적인 가스 가격 인상 흐름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 책임 공방을 벌이기보다 대책을 마련하고 실효성 높은 지원 방안을 서둘러 모색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가스 가격 상승은 2021년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짐이 있던 때부터 천연가스 공급에 어려움이 예상되면서 급속도로 진행됐다. 이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주택용 가스요금을 3배 이상 올리는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평균 2배 이상 요금을 인상했다. 또 미국, 영국 등 비EU 국가들도 꾸준히 가스비를 인상해 온 것에 비하면 국내 인상 폭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난방비가 전달의 2~4배에 이르면서 민간에 미친 충격이 컸다.

문제는 뾰족한 난방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가스공사 미수금이 2021년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9조원에 이르는 등 요금인상 요인도 남아 있다. 정부는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도 국내 요금 인상 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고 변론한다. 하지만 오히려 요금 인상을 억제해 왔기 때문에 추가 인상 요인이 더 많이 남게 됐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서둘러 에너지 바우처 홍보 및 지원을 확대하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난방비를 할인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대상자가 신청해서 받아가야 하는 에너지 바우처는 지원 대상의 적극성을 요하기 때문에 이미 미사용액이 많이 쌓여 있는 등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지만 이미 예고된 어려움에 선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요금을 정상적인 규모로 인상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또 실효성 있는 서민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가스 한 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수입 에너지를 펑펑 쓰고 남 탓만 할 텐가.

Photo Image

김영호기자 lloydmind@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