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비싼' 고객경험

대한민국 산업계가 가장 많이 외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고객'이다. 가전 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고객경험'을 최우선 경영기조로 정하고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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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이 난방 가전을 살펴보고 있다.

시장의 무게 중심이 고객으로 기운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고객 수요 맞춤형 탄력적 제품 생산은 제품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제품을 나에게 맞추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왔다.

고객경험 확대와 맞춤형 제품 혁신은 서비스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TV를 켜면 맞춤형 콘텐츠 리스트가 올라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레시피도 제안한다. 세탁기 역시 내가 쓰는 세제의 양을 분석해서 적고 많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옷감에 따른 최적의 세탁 방법까지 제시한다. '스마트'함과 거리가 멀었던 TV와 세탁기의 혁신은 가전사들이 고객 사용 환경을 끊임없이 분석한 결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면서 고객 지향적 경영 전략은 강화됐다. 팬데믹 기간에 가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가전 수요가 급속도로 차가워진 점도 '고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똑똑해진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 브랜드나 디자인을 넘어 사용자경험을 중시한다. 이제 가전 비즈니스는 단순히 제품을 팔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제품 상담부터 구매·배송·사후관리까지 전 주기에 걸쳐 고객에게 긍정적인 사용자경험을 주지 못하면 소비자는 외면한다.

여기서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수요 맞춤형 제품은 고객경험을 높일 진 몰라도 기업 경영에 긍정적 요소는 아니다.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는 데다 제품별 투자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고객경험이 강조되는 환경에서 프리미엄 전략도 함께 힘을 받는다. 가전 수요가 줄면서 적게 팔고 많이 버는 프리미엄 전략은 생존 과제가 됐다. 프리미엄 전략은 고객경험 확대 미션과 결합해 가전 산업을 이루는 양대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고객경험 강화와 프리미엄 전략이 같은 노선을 달리면서 소비자도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 혁신인지 수익성을 높일 수단인지 자세하게 살펴본다. 최근 너도나도 프리미엄을 강화하면서 중저가 라인업을 아예 없애는 전략까지 취하고 있어 소비자 불만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 IT 기기 중심으로 중저가 라인업 통폐합과 함께 가전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라인업 비중을 줄이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고객경험은 고도의 맞춤형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선택권 보장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미 맞춰진 제품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도 고객경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기업은 명심해야 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