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칼럼]컬리의 상장 연기와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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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인인가. 컬리의 상장 연기가 연초부터 e커머스와 스타트업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컬리는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말미암은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 한국거래소 상장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시장 분위기로 보면 별로 놀라운 뉴스도 아니다. 세계 시가총액 10위 안에 있던 메타는 1년 전에 비해 65.3%, 테슬라도 63.3%나 기업가치가 하락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포드와 폭스바겐이 거액을 투자하며 9조원 이상의 평가를 받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아르고AI'는 최근 사업을 아예 접었다.

삼성전자도 34% 하락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도 50% 이상 기업가치가 줄었다. 특히 유니콘 기업이나 규모가 큰 플랫폼 기업, 스타트업은 대부분 1년 전에 비해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특정 기업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만큼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전체 시장이 안 좋아진 것이다.

대부분 언론은 거시경제 상황과 주식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보다는 단지 컬리 자체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상장 연기가 아니고 사실상 철회다' '문어발식 확장이 문제였다' '과도하게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투자를 많이 받아서 창업자의 지분이 너무 작다' 등 다양한 원인을 들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내용의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분히 결과편향적인 분석이고 평가다. 그러나 만약에 상장을 연기하지 않고 그냥 진행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면 언론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야말로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알렸을 것이다

컬리는 밤 11시까지 주문한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이튿날 새벽 문 앞에 배송하는 '샛별배송' 서비스를 2015년 최초로 도입,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를 기반으로 컬리는 신선식품 배송업계 1위를 기록하며 지난해 초 기업가치 4조원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또 글로벌 투자자의 투자 유치 후 장외시장에서 8조원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컬리는 사실 초기부터 지속적인 회의론 속에서 커 온 업체다. '새벽배송'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과거에는 '사업성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컬리가 사실상 시장을 개척해 오면서 사업성을 입증했다. 컬리의 비즈니스모델에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신세계, 이마트, 현대백화점, 롯데, 네이버, GS리테일, 쿠팡, 오아시스 등 수많은 경쟁자가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대기업이다. 경쟁 심화로 국민들은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리게 됐다. 스타트업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렇듯 스타트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개별 회사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사람들이 포용하면서 나타나는 과정 속에 있다. 어렵게 회사를 세워서 세상에 없는 비즈니스모델로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편리함과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지만 혁신을 추구하고 더욱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며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는 과정을 즐긴다.

반도체나 자동차가 실적이 좋지 않거나 IRA 등 안 좋은 뉴스가 들리고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면 빠르게 정상화시킬지를 국가 차원에서 고민하고 세금도 깎아주고 지원을 해준다. 물론 국가 기간산업이니 보호해야 하지만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느낌이다. 스타트업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심지어는 수조원을 넘는 기업가치를 지닌 유니콘 기업에게서도 말이다.

스타트업이 온갖 역경을 딛고 성장을 거듭해 유니콘기업이 되는 확률은 0.065%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렵게 유니콘 타이틀을 얻어도 엑시트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유니콘기업이 새롭게 탄생하면 온갖 칭찬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럴 줄 알았다' '시기상조였다' '지나치게 독선적이다' 등 기다렸다는 듯이 패인을 분석하고 쉽게 지운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고 난 후의 관전평만 남는 느낌이다.

회사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상장에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죄인이 돼야 하는가. 상장을 연기했든 진행했든 컬리의 내용은 다르지 않다. 달라진 건 시장 상황이지 회사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평가만 달라질 뿐이다.

'누가 죄인인가'는 뮤지컬 '영웅'의 대표곡으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체포된 후 일본 법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를 논리 정연하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을 재현한 곡이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창작 뮤지컬로 민족주의나 영웅주의에 치울 칠 수 있다는 우려를 씻고,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며 초연부터 흥행에 성공한 걸작이다.

안트러프러너들에게 최후의 변론을 하라면 '내가 죄가 있다면 사람들을 위해 좀 더 편리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열심히 노력한 죄…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긴 죄…'라고 할 것 같다. 뮤지컬 영웅의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된다.

지금도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컬리를 비롯한 모든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미 없는 분석이 아니라 지금까지 힘들게 키워 온 성과에 대한 칭찬과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격려다. 안트러프러너는 비난 대상이 아닌 격려 대상이 돼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오늘도 혁신은 진행형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