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훈의 디지털플랫폼정부 철학]〈2〉 플랫폼으로서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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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프라분과 위원장)

대의민주주의란 인구가 많은 현대국가에서 피할 수 없는 제도지만 위임받은 정치인이나 관료의 결정과 행동에 따라 의도적이든 아니든 근본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에는 발전한 현대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토머스 제퍼슨 같은 민주주의 선구자들이 생각하던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기본 철학이 있다.

디지털 기술의 힘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는 행정, 경영, 디지털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많은 사람이 정부의 디지털 혁신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강력한 거버넌스의 힘이 필요하며, 최고 결정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간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거버넌스 구조를 아날로그적인 거버넌스 구조에서 탈피해 거버넌스 시스템 자체에 디지털 혁신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애플의 등장은 시장의 역학 구조를 기술적인 혁신으로 일시에 뒤바꾼 사례다. 애플이 휴대폰 시장에 등장하기 전 이통 시장은 거대 통신사들이 통신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독과점 시장에서 그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또 다른 대형 공급사로부터 공급받아 배급하는 시스템이었다.

휴대폰 공급자는 통신사의 선택을 받아야하고, 또 그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나 부품을 공급하는 공급자들은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노키아, 모토로라 같은 휴대폰 업체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전형적인 2차산업형 공급망 구조다.

그런데 애플이 독자적으로 앱스토어를 통해 자신들의 휴대폰을 판매하고 휴대폰에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서 자신의 수요에 맞는 모바일 서비스를 고객 스스로 구성할 수 있게 하자 업계의 역학 구조가 혁신적으로 민주적 시스템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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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5일 앱스토어의 등장을 개발자들에게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 (출처: 애플 개발자대회 동영상)

스티브잡스는 2008년 앱스토어를 개발자들에게 발표하면서 말했다. “개발자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쓴 소프트웨어를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개하고 혹시 그들이 여러분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좋아한다면 그들 모두가 사용하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 과거에는 그런 일은 엄청난 리소스를 요구하는, 작은 회사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아니 아주 큰 회사들도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실제로 수많은 개인·군소 개발자들이 그들의 소프트웨어 하나로 고객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큰 부자가 되게 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장을 크고 작은 개발자들과 공유하였지만 애플의 역할은 전혀 축소되지 않았다. 이것이 플랫폼의 힘이다.

플랫폼형정부(GaaP) 개념은 미국의 저명한 출판인 팀 오라일리가 2010년에 처음 쓴 같은 이름의 보고서로부터 대중에게 알려졌다. 보고서는 '열린 정부'라는 책의 한 챕터로 출판됐다. 보고서는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많은 국가의 디지털정부 서비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라일리의 GaaP 구상은 정부의 서비스에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오픈플랫폼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민간 시장에서도 플랫폼 서비스가 막 선을 보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혁신적인 아이디어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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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일리의 보고서가 실렸던 책 열린 정부

행정 서비스 주체로서 민간의 참여를 제한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고수해 오던 관료주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미국의 FedRAMP 마켓플레이스, 영국의 gov.uk의 마켓플레이스가 이 개념을 도입해 정부가 행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민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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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GDS가 운영중인 디지털 마켓플레이스. 정부 서비스에 앱스토어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였다. (출처: https://www.digitalmarketplace.service.gov.uk/ 캡쳐 )

영국은 서비스, 세금 등과 관련된 결제 서비스를 정부가 하지 않고 2개의 결제서비스 회사를 참여시키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를 국방성이나 중앙정보국(CIA)의 극비정보를 취급하는 시스템에도 적용하고 있는데 최근 국방성의 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자로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그리고 오라클 등 복수의 사업자들을 참여시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 철폐, 제도 혁신을 약속하고도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닥쳐 실패한 데는 혁신이 지속적으로 증폭될 수 있는 자발적인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서비스 모형이 국민과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압도적인 경험의 차이를 통해 파괴적인 혁신을 이루어 내게 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국민의 편의성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 권한을 비약적으로 바꿔 놓는 일이 될 것이다.

오종훈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프라분과 위원장)·johnoh@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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