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대만해협에 불려 나온 위기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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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의 집권 이후 시작된 중국과 거리 두기가 중국 대만 침략, 미국 개입, 아태지역 국가 연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도 대만해협에 세 차례 위기가 발생하며 긴장이 고조된 적이 있다.

1차 위기는 미국과 대만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논의가 주된 원인이 된 1954·55년, 2차 위기는 마오쩌둥이 본토 권력 강화를 목표로 대약진 운동을 추진했던 1958년, 3차 위기는 대만 총통 리덩후이의 미국 모교 방문을 독립 시도로 간주해 미사일을 발사한 1995·96년에 각각 발생했다. 세 차례 위기는 중국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의 확고한 대만 방어 의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대만 내 반중감정 증가라는 부정적인 결과만을 양산한 채 종결됐다.

상대적으로 단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된 당시 위기와 달리 현재 상황은 과거의 충돌을 초래했던 원인이 모두 내재한 상황에서 중국 내 시진핑 주석의 1인 지배체제 공고화, 미·중 패권 경쟁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신냉전 도래라는 변수가 더해져 복합적, 장기적, 구조적 갈등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는 1차 위기의 근원이 됐던 대만 방어 기제를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자국과 대만 고위관리의 상호 방문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 대만의 외교력·군사력 강화를 목표로 한 대만보증법 등을 인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9년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대만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실험에 옮기고 있다. 1차 위기의 근원이 미국과 대만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시도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미국과 대만의 관계를 강화하는 다양한 법안의 제정은 중국의 인내심이 얼마나 지속될 지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2차 위기는 발생 시기가 본토에서 마오쩌둥이 정치 캠페인을 추진할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 갈등이 필요한 시점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오쩌둥처럼 이데올로기 전선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통한 '중국몽' 달성에 박차를 가하는 시진핑 노선의 미래가 불안정해 보이는 이유다.

3차 위기는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독립의 신호로 여긴 중국이 군사 훈련 기간 미사일로 도발을 한 사건이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비롯해 미국 각 부서의 장·차관, 상·하원의 주요 지도자, 도지사 등이 연이어 대만을 방문했다. 여기에 2020년에는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 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낸시 펠로시 방문 이후 중국은 대만을 포위하는 군사 훈련을 오랜 기간 감행하면서 다량의 미사일과 포탄 발사로 대만을 위협했다. 과거 세 차례 위기의 원인을 최근 상황에 대입할 때 현 위기가 쉽게 진정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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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는 세 번의 위기를 촉발한 원인에 대만의 탈중국화,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이 합해져 대만해협 위기가 고조하고 있다는 주장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위 요인 외에 위기의 나선형 구조에 속도를 더하는 정치적 구도에 대한 한층 심도 있는 분석이 추가돼야 한다.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무엇보다 개인이 추구하는 권력의 속성과 관련 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결정지은 20차 당대회 이후 위기가 실제로 구현될 가능성과 관련이 깊다.

시진핑은 19차 당대회 이후 당대 중국의 2인자인 덩샤오핑의 치적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다. 구체적으로 개혁개방, 경제발전 우선주의, 시장 기능의 심화, 선부론의 결과 나타난 중국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국유기업 역할 증대, 공동부유 같은 사회주의 노선으로의 복귀를 강조해왔다. 그리고 국가 헌법과 공산당의 헌법 격인 당장에 시진핑 특색의 신시대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하며 자신을 마오쩌둥과 동급 반열에 위치시켰다.

주지하다시피 시진핑은 10년 전 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으로 등극한 직후부터 중화민족의 부흥을 통한 '중국몽'의 실현을 지상 과제로 내세워왔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대만 통일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집권 이후 당, 정부, 군부에서 정치적 경쟁자를 숙청하며 권력을 강화한 결과 덩샤오핑까지 넘어선 시진핑의 마지막 경쟁자는 마오쩌둥이 유일하다. 이미 죽은 마오쩌둥의 명성을 현존하는 시진핑이 앞지를 방법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이루지 못한 중화민족 통일과 '중국몽'의 실현이다. 종신 집권이 가능한 현재 시점에서 개인의 '원대한 꿈'을 포기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또 다른 변수로 정치체제의 속성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의 원리, 언론과 여론의 힘으로 고위직 정치행위자의 절대권력 추구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 비록 불완전성과 비효율성 단점에도 민주주의에서는 탈선한 정치지도자의 무모한 욕망을 억제하고 국가 갈등에서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자정 기능이 작동한다.

하지만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된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주체할 수 없는 욕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비제도적이지만 집단지도체제, 파벌 간 견제와 균형, 격대지정(隔代指定), 10년 주기 정치 권력 교체 등 관행을 통해 점진적 정치 개혁을 추구해왔다. 19차 당대회 이후 이와 같은 관행과 규칙에서 일탈한 시진핑은 지난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한 최고위직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시자쥔(習家軍)으로 충원했다. 비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정치 발전 경로에서의 이탈이 더 강력한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은 세계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통일에 집착하는 시진핑 개인의 생각이 전체 합의로 포장되는 집단사고의 오류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아직 미국과 전면전을 감행할 준비가 부족한 중국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2024년 1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을 대체해 국민당이 집권하거나, 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만 여론이 현 대만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지상 과업이 언제까지 허세만으로 머물지 의문이다.

함명식 중국 지린대 교수(asymmetryir@naver.com)

○…함명식 교수는 중국 지린대 공공외교학원 교수 겸 한국외대 HK+ 국가전략사업단 공동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문학사, 연세대 정치학 석사, 미 버지니아대 박사과정을 거쳐 지린대에서 국제관계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중 관계와 미·중 패권 경쟁, 중국의 동아시아 외교가 주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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