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남양유업, 재기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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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업계가 술렁인 한 해였다. 원유가격 협상이 지연되다 50여일이 지나 합의됐고, 유업계에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슈가 많이 발생한 업체는 푸르밀과 남양유업이었다. 롯데그룹에서 독립한 '푸르밀'은 15년 만에 돌연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가 25일 만에 이를 철회했다. 푸르밀은 직원 350여명과 대리점주·협력사에도 사업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돌아섰다. 지난해부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양유업은 결국 1심에서 주식매매 계약 상대방인 한앤컴퍼니에 패소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등 일가는 즉각 항소했지만 2심 원안 소송 기일 변경을 신청하며 소송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푸르밀과 남양유업 사태의 본질은 닮았다. 두 사태 모두 경영난의 원인으로 '오너 경영 실패'가 지목된다. 푸르밀은 오너 일가가 지분을 90% 보유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신동환 대표가 단독 경영을 맡은 이후 적자가 늘며 내리막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본사 부서장이 30% 기본급을 삭감하고 직원은 근로 시간을 1시간 줄여서 임금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준호 전 회장은 올해 초 퇴직금으로 30억원을 받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후 푸르밀은 통상 폐업이나 청산이 아닌 사업 종료를 택했다.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회사 매각이 무산되자 법인이 보유한 부동산을 활용할 가능성도 나왔다. 실제 푸르밀은 매각을 위한 기업 실사 직전에 서울 문래동 본사 사옥 부지를 담보로 자금을 유통했다. 푸르밀이 사옥 부지를 담보로 삼은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푸르밀은 사업 종료를 철회하면서 '오너 경영 실패'를 인정했다. 직원으로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서 비상 경영에 들어가고,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 정상화를 이룬다는 계획을 세웠다.

푸르밀이 사태 정점을 지나 안정화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딘 반면에 남양유업은 아직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양새다. 남양유업은 상반기에 영업적자 422억원을 기록했고, 하반기에도 적자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한앤컴퍼니 간에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서 오너 경영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허위 주장한 '불가리스' 사태를 비롯해 대리점 갑질, 외조카 황하나 사건 등에 대해 책임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 매각을 하면서 본인의 고문직 보장(차량, 기사, 사무실 제공)과 부인인 이운경씨의 고문직 보장(연봉 1억6000만원, 차량, 기사 제공), 자식인 홍진석·홍범석 고용 보장을 추가로 요구했다. 소송에서도 별도 합의서를 근거로 주식매매 계약해제에 대한 책임을 다투며 홍 회장 일가는 여전히 재직하고 있다. 홍 회장이 상반기에 수령한 보수는 8억1100만원이다.

내년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 마련에만도 정신없을 때다. 실패는 딛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그러나 먼저 실패를 인정해야 일어설 수 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