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열린 산·학·연 반도체 협력 생태계 조성에 대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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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은 전통적으로 민간 기업들의 주도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관련 기술을 국가 안보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며 경쟁적으로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최근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특별법(CHIPS Act)을 발표했으며,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표방하며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관련 산업에 쏟아붓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국제 흐름에서 선도적 위치를 계속 지켜 내기 위한 정부·기업·학계 모두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6월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성장 지원대책'은 매우 의미 있는 시작점이라고 여겨진다.

대학에서 반도체 회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필자에게 가장 반가운 부분은 반도체 메모리 내부에서 연산을 수행하는 PIM(Processing-in-Memory)을 연구하는 학교나 연구기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선도기업에서 메모리 관련 첨단 공정 정보를 지원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산·학·연 협력 생태계 조성을 통해 반도체 회로 연구 및 교육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메모리 공정 특성상 기업들이 외부 연구자들에게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해 왔다. 이번 지원대책은 그런 장벽을 낮춰 더 깊은 레벨의 메모리 셀 및 공정 관련 정보에로의 접근을 허용, 새로운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는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기업이 제공하는 메모리 설계 관련 정보가 기존 대비 상세해짐에 따라 이를 기반으로 한 PIM 회로 연구에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집적도와 완성도가 높은 AI 회로 및 시스템 설계로 이어져서 학계의 연구 수준을 크게 높일 것이다.

둘째 이렇게 개발된 우수한 연구 내용은 공정 정보를 제공한 회사와의 후속 공동 개발을 통해 제품에 적용, 참여 기관 모두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 기술에 기반한 AI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이 기존의 반도체 파운드리가 제공해 온 IP에 추가돼 타국의 파운드리 회사 대비 수월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셋째 기업이 원하는 준비된 연구 인력 양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는 대학원생 등 후속세대 연구자들은 최신 반도체 기술 환경을 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입사 후 회사가 기대하는 연구개발 활동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산·학·연 협력 방안은 이런 한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들어 공학 기술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는 것은 관련 구성원들이 활발히 소통하는 열린 생태계 조성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기여를 통해 소프트웨어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대표 사례다. 물리적 형태가 없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반도체 칩 설계의 경우 공정 환경의 제공 없이는 유사한 혁신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어려움에도 국제적으로는 이미 오픈소스 반도체 칩 연구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7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SkyWater Technology가 퍼듀대에 반도체 팹을 세워 산·학·연 공동연구의 장으로 삼는다는 뉴스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기업 입장에서 현재 매출에 바로 도움이 되지 않는 실험적 설계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혁신이 일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에 정부·기업·학계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지원대책을 시작으로 향후 산·학·연 연구진이 함께 반도체 소자·공정·회로 전 분야에 걸친 도전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것을 최첨단 공정보다는 오래됐지만 안정적인 파운드리 공정에 적용, 대규모 칩 제작까지 시험할 수 있는 전용 연구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지원을 꿈꿔 본다.

김재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kimjaej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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