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전국민 통신 데이터를 활용한 합작 신용평가사(CB)를 설립한다. 비금융정보를 통한 신용평가 서비스를 통해 빅데이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취지다. 이통 3사가 보유한 수납 정보만 해도 5000만건이 넘는다. 이통사 주도 신용평가 모형이 상용화하면 그동안 채무, 신용정보 등 정량적으로만 평가되던 신용평가 기준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SGI서울보증·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전문개인신용평가업에 진출하기 위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이통 3사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이통사는 국내 최대 빅데이터 정보를 보유했지만 신용정보법에 막혀 텔레스코어 등 극히 제한된 부분에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 신용정보법 개정 등으로 이통사 규제가 완화됐고, 각자 행보로 고수하던 이통사가 최초로 데이터 협력 진영을 구축했다.
합작법인 설립에는 총 자본금 250억원이 투입된다. 이통 3사가 26%씩, SGI서울보증 및 KCB는 전략적 투자자로서 11%씩 지분을 출자한다. 5개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다. CEO는 외부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하기로 했다.
신용평가 서비스는 내년 하반기에 상용화될 예정이다. 특히 데이터 주도권을 놓고 금융과 비금융 간 경계가 사라지는 언번들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전통 금융에 불편을 느꼈던 소비자가 플랫폼 기반 디지털금융으로 갈아타고 있다. 전통금융의 신용평가 서비스도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통사가 전혀 다른 측정 모델의 신용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경우 금융 환경 자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자상거래 기업이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를 시작했고, 기존 상거래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용평가와 소액대출 등 금융서비스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메시징 기업도 이용자 간 네트워크를 활용한 간편송금 서비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역의 부가 금융서비스를 내재화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텐센트가 이 진영에 속한다.
이종기업이 금융산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고, 그 바탕이 되는 게 데이터 기반 플랫폼이다. 가장 강력한 데이터를 보유한 진영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이통사다. 게다가 이통사는 AI, 블록체인, 간편결제, 유통 등 강력한 핀테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 간 교차 금융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통사 합작법인 출범에 따른 전통 금융과 빅테크의 경쟁 구도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평가모델로 시작되는 경쟁이 마이데이터, 더 나아가 다양한 금융 영역에서 질적 경쟁을 끌어 내며 '메기 효과'를 촉발할 공산이 크다.
합작법인은 가입자 정보를 기반으로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 예정이다. 유무선 통신 및 IPTV 납부 정보, 단말기 변경이력, 단말할부정보, 연체이력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2026년에는 연 매출 70억원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향후 통신 데이터뿐만 아니라 가스, 전기, 수도 등 다양한 비금융데이터와 결합해 신용평가 모델을 개선할 수도 있다.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