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실감 콘텐츠와 박물관

Photo Image
김상헌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박물관이 화려해지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수십곳의 국공립 박물관에서 실감형 전시와 스마트 콘텐츠가 새롭게 보태지면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양한 전시가 등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통해 파노라마와 가상현실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첨단기술과 문화유산 융합을 현실화한 것이다.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실감 콘텐츠를 통해 전시에 대한 몰입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날 수 있다. 백제인의 탁월한 예술 감각과 공예 기술, 백제 종교와 사상을 담은 백제문화의 정수다. 여기에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한 실감 콘텐츠가 백제금동대향로의 진가를 확인시킨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미래 기술을 활용해 박물관의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 박물관·미술관 기반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1곳의 실감 콘텐츠 제작 지원과 65곳의 스마트 박물관·미술관 지원 사업에 이어 올해도 50곳 이상의 스마트 전시공간 구성 사업을 지원한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조용하고 진지한 공간을 떠올릴 것이다. 박물관의 기본적인 기능인 유물 수집·보존·전시는 유물 중심 공간으로 설정하도록 했다. 계몽주의가 등장한 이후 박물관을 활용한 대중 교육이라는 기능이 강조되고, 최근에는 참여형 전시까지 등장하면서 박물관은 관람객이 전시에 직접 참여하거나 체험하는 공간 기능까지 확장됐다.

박물관의 시작인 뮤제이온(Museion)은 음악의 신 뮤즈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온갖 진귀한 보물과 예술품을 모아 둔 곳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호기심 방'은 진귀한 물건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재력을 자랑하는 공간이었다. 지리 발견과 무역 확대로 신대륙으로부터 수집한 다양한 이국적인 물건들을 자랑하는 공간이 지적 자극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확장했다.

박물관이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볼거리를 채우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박물관을 위한 스마트 콘텐츠 제작과 운영은 박물관 입장에서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감당해야 했다. 박물관은 스마트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콘텐츠 제작업체는 박물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콘텐츠에서 구현 기술이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잔칫상을 차리는 데 그릇 종류를 따지지 않는다. 칼질하는 방법이나 조리법도 따지지는 않는다. 좋은 재료와 함께 정성과 최선을 다한 조리사의 노고는 항상 화려한 음식에 녹여져 있다. 박물관 콘텐츠를 기획할 때도 문화유산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문화유산 복원에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많은 유물은 본 사람이 없고, 남은 자료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면 좋겠지만 사진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그 이전 유물은 그저 전해지는 대로 짐작만 할 뿐이다. 고려 시대 몽골에 의해 불탄 신라 황룡사는 터만 남아 있다. 텅 빈 넓은 공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제대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할 수가 없다. 정부는 현재 10여개의 황룡사 터 복원안을 마련했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룡사 복원 모습을 딴 한 기업체 연수원이 지어지면서 좀 더 실감나게 추측할 뿐이다. 실감형 콘텐츠 기술은 이러한 고민을 진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다. 황룡사 터에 세워진 황룡사 역사문화관에는 지금까지 고민해 온 황룡사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일부 공간은 증강현실(AR)로 체험할 수 있다. 이는 실감형 콘텐츠가 문화유산에서도 자리를 잘 잡아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감형 콘텐츠는 문화유산 가치를 현대 기술로 풀어 내면서 새로운 유산을 만들고 있다. 박물관 공간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전통과 변화를 함께 실감할 수 있는 융합 콘텐츠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nigma92@smu.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