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선 은제련법의 외침이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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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국가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은제련법인회취법(灰吹法) 이다. 회취법은 납이 포함된 은광석에서 녹는점의 차이를 이용해서 납만을 산화시키고, 은을 뽑아내는 방법으로 당대 최고의 획기적인 첨단기술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503년 5월 18일에 양인(良人)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이 임금(연산군) 앞에서 시연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첨단 은제련기술은 향후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조선이 개발한 당대 최고 기술은 정작 조선에서 꽃 피우지 못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빛을 발하게 돼 일본을 세계적인 은(銀) 생산국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급기야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하는 군사력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비참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16세기는 대항해시대로 유럽과 아시아가 무역으로 연결되는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이 때는 세계적 통화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포르투갈과 명나라와의 무역, 동남아시아 믈라카(말레이반도 서쪽연안)에서 일본과 포르투갈의 무역을 비롯해 은을 매개로 상업활동이 번성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국제정세속에서 조선이 취한 전략은 세상물정 모르고, 국제사회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은광폐쇄'였다. 심지어 국왕 선조는 은을 캐다 걸리면 국경지대로 강제 유배시켰다. 조선의 지도층과 선비들은 백성들이 사치스러운 금, 은을 캐면 농사철에 방해가 되고, 백성들이 이득에 눈이 멀게 된다는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지도층의 역할이 아닐까.

반면에 일본은 조선의 회취법을 들여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갔다, '이와미 은광'은 스페인이 점령한 볼리비아 포토시(Potosi)를 누르고 세계 1위의 은광이 되었다. 넘쳐나는 은광과 함께 1543년 포르투칼로부터 조총(철포) 2정을 구입한 일본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철포와 군선을 은화로 준비하며 마침내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사건이고 치욕스런 역사이지 않은가.

국제정세의 우매함으로 우리는 세계최고의 은제련기술을 통해 국부창출을 도모하고 격동의 대항해 시대에 있어서 주역으로 우뚝 설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로 인한 백성의 고통은 너무나도 힘겨웠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전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대 격변기에 직면해 있다. 총성없는 산업전쟁의 연속이다. 플랫폼경제, 순환경제, 수소경제, 블록체인, 인공지능, 암호화폐, 바이오 등 무궁무진한 기회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산업경제 흐름을 자동차 경주에 비유하자면, 순위가 안바뀌는 직선코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위가 바뀌는 곡선코스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부창출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인 셈이며 국가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정부의 각종 정책, 제도, 규제 등이 국부창출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21세기 산업패권전쟁은 산업, 경제를 뛰어넘어 '외교', '안보' 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가는 혜안과 통찰이 더욱 더 절실하다. 국제정세를 꿰뚫고 포석을 두는 20대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며, 기업은 이에 발맞추어 지구촌을 거침없이 누비며, 전세계에 우뚝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회취법의 우(遇)를 범해서는 안 되며, 이것이야말로 조선시대 은제련법의 쓰라린 외침에 후손인 우리가 화답하는 길일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인에너지>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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