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59〉대학-연구기관 협력 30년,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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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라믹 연료전지를 연구하는 필자가 공동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한 기관 가운데 하나가 독일 율리히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거대 국가 어젠다를 연구하는 헬름홀츠연구회 산하 19개 연구기관 가운데 하나로, 뇌과학·정보기술·에너지·환경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종합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연구 포트폴리오가 상당히 유사해 종종 눈여겨봤다. 율리히연구소는 그 자체로 소속 연구원이 5000명이 넘는 대형 연구소이지만 외부기관과의 협력에 많은 힘을 쏟는다. 특히 30분 거리에 있는 아헨공대와의 협력이 대표적이다. 2007년 '율리히-아헨 연구동맹'(JARA)을 결성해 뇌과학, 에너지, 입자물리, 정보기술, 소프트 소재 등에서 대학과 연구소 간 경계를 넘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역시 연구기관과 대학은 오랫동안 상호협력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은 1962년부터 콜로라도대와 천체물리공동연구소(JILA)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만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세계적 연구성과를 올렸다. 메릴랜드대와 생명공학연구소(IBBR, 바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대와 홀링스해양연구소(HML, 기후변화) 등 공동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이화학연구소가 1989년 사이타마대와 연계대학원을 처음 개설한 후 여러 대학으로 확대해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획기적 연구에 수여하는 브레이크스루 상(Breakthrough Prizes)은 '과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2022년 기초물리 분야 브레이크스루 상은 오차가 50억년에 1초도 안 되는 광격자 시계를 개발한 예쥔(Jun Ye) 연구원이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JILA 소속 연구원이다. 연구기관과 대학이 힘을 합치고, 여기에 지속적 투자와 지원이 이뤄졌을 때 노벨상은 물론 세계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동학위과정부터 공동연구소 운영까지 다양한 수준의 협력사업을 펼치는 것은 각 혁신 주체가 보유한 연구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강점은 더욱 견고하게, 약점은 보완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기관은 대학에서 보유할 수 없는 첨단의 대형 연구장비를 갖추고 있고, 다수의 박사연구원으로 구성된 집단연구를 하고 있다. 대학은 창의적이고 우수한 교원과 학문 후속세대인 석·박사 학생이 다수 포진, 서로가 파트너가 돼 상보성에 기반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학·연협력모델은 KIST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1991년 고려대 및 연세대와 최초로 '학·연 협동연구 석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래 KIST의 우수한 연구 장비와 실험 환경을 활용, 대학 단독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고난도 연구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수도권 14개 대학, 강원·전북에 위치한 7개 대학과 협정을 맺고 미래세대 연구인력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고려대와 에너지환경대학원(KU-KIST 그린스쿨), KU-KIST 융합대학원의 2개 공동대학원을 양 기관이 협력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연 협력은 30년이 되었으니 청년에서 장년이 되어 가는 시점이다. 학·연 협력에 지속적이고 항구적으로 지원을 늘리고, 출연연과 대학 간 인력 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석·박사과정 인력 양성을 넘어 협력의 구조적 장애가 없도록 공동대학원, 공동연구소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공공부문에서 연구와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출연(연)과 국립대 협력을 확장, 수월성 기반의 집단-융합 공공성 연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할 때다. 이는 이미 입증된 우수한 국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유력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인재 양성 없이는 과학기술 입국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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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원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연구부원장

손지원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연구부원장 jwson@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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