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관련 최상위 국제합의인 파리협정이 작년 말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부이행규칙'(Paris Rulebook)을 최종 완성, 본격적인 탄소중립 시대 개막을 알렸다. 2050년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넷 제로(Net-Zero) 달성, 지구 온도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 장기 마라톤의 출발선상에 선 셈이다.
이미 세계 경제의 90%에 해당하는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으로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탄소중립을 향한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취사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시대적 과제가 됐다. 이제는 실질적인 행동과 실천을 위한 '속도'와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기후변화 경제보고서'를 통해 향후 반세기 기후행동 여부에 따른 유럽과 아·태지역 국가들의 비용 편익을 분석하고 시기별 탈탄소 경로를 제시, 조속한 대응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2070년까지 미흡한 기후 대응이 한국 경제에 끼칠 누적 손실비용은 약 935조원(2070년 예상 GDP의 2.5%)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반대로 1.5도 시나리오에 맞춰 과감하게 대응했을 때는 약 2300조원의 부가적인 경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초기의 신속하고 과감한 기후 대응과 사회·경제 조직 전반의 중장기 혁신을 통한 체계적인 전환이 핵심이다.
저탄소를 넘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화시키는 탈탄소 경제 실현은 사회와 경제를 구성하는 각계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요구한다. 최근 기후위기 인식이 확산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도입 붐이 일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정부 외에도 기업과 시민사회 등 민간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분리된 개별 조직, 사업, 또는 특정 산업에 제한해 협소하게 추진되는 특성상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 맥락 하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 생태계 내에서 상호 의존적이지만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다양한 하위 시스템들을 최상위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즉 각각의 시스템 내, 시스템 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연결 지점을 찾아 연계해서 외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동시적 변환과 상생적 혁신을 꾀해야 한다.
전기차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로서 진가를 발휘하려면 단순한 전기차 생산·공급을 넘어서야 한다. 생산-제조-사용 전 단계에 걸쳐 지속 가능한 원자재 추출·생산, 폐기물을 적게 배출하는 자원 순환형 제조,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충전 인프라, 전기차 구매 보조 등 지원 정책이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 차원에서 톱니바퀴처럼 체계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 소비자, 정부, 투자자 등 각 시장 참여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가속화할 다양한 기후 솔루션이 여러 부문과 산업에 산재돼 심각한 병목 현상에 처해 있는 작금의 실상은 시스템 통합·재편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이는 시스템적 관점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들 간 교차점에 기후위기를 해결할 열쇠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강력한 기회가 숨겨져 있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 탄소중립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모빌리티, 에너지, 산업 등 온실가스 감축 잠재 여력이 높은 주요 시스템을 중심으로 하나의 상호 유기적인 '제로 카본'(Zero Carbon)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로써 기술, 정책, 금융이 변화의 촉매제로 최적의 접점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과도기에 불가피하게 수반될 수밖에 없는 여러 장애 요인을 협력적으로 제거해 탈탄소 전환을 조속히 이뤄낼 수 있다.
정부는 올해를 '2050 탄소중립'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이행 원년으로 삼고 사회와 경제구조 전반의 탄소중립 전환 노력과 함께 이행 기반을 공고히 다질 것이라 밝혔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 inbaek@deloit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