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엮어 물가에 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비버. 본래 북아메리카와 유럽, 시베리아 등 북극을 둘러싼 지역에 산다. 북극보다는 남쪽, 보다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버들이 점차 북극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 연구들은 비버들이 북극 최북단에까지 진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극지방 개울을 댐으로 막으면서 발생한 연못과 물 웅덩이 수는 지난 2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전한다.
알래스카 북부, 서부 지역에 서식하는 비버만 5만~10만마리로 추산된다. 알래스카 서부 해안 시워드 반도는 상당 부분을 비버가 차지했다고 한다. 북극이 비버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비버가 예사롭지 않은 기세로 전진하고 있다.
이런 북진은 기온 변화 탓이다. 기후 변화, 이상 기온 현상으로 북극과 인근 지역이 더워지고 이전과 달리 비버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지역에서는 이미 한겨울에도 영상 기온을 보이는 일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는 알래스카 최대 섬인 코디액 기온이 12월 26일 섭씨 19.4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북극 지역도 이맘때가 한겨울이다. 혹한이 몰아치는 계절인데다 극지방 특성상 해도 잘 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향하는 시기 온도가 관측됐다.
2020년 6월 20일에는 시베리아 베르크호얀스크 기온이 섭씨 38도까지 올라갔다. 여름철이기는 하지만 지역 특성상 터무니없는 온도다. 이 시기 시베리아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았다. 최근 북극은 전 지구적인 온난화 추세 속에서도 지구 전체 평균보다 세 배 빠른 기온 상승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기후 변화와 이상기후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한 비버의 전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더욱이 비버 스스로 기후 변화를 가속화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버는 강과 개울을 막고 물 웅덩이를 만든다. 좁은 지역에 한정되지만 물 웅덩이가 주변 얼음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 비버 개체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물 웅덩이와 해동 지대 역시 크게 확대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얼마일지 몰라도 북극 영구동토 해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북극 영구동토에는 얼어붙은 유기탄소가 존재한다. 아주 오랜 기간을 그렇게 유지돼 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얼음이 녹고 동토층이 분해되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에 방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후 재난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광범위한 영구동토층이 녹는다면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기후 변화로 북극 온도가 높아지면 비버 개체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얼음을 녹여 온도를 높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면 기후 변화와 북극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