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신선한 우유, 변질된 광고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째다. 작심삼일로 레슨비만 허무하게 날려서 스코어 산정조차 어렵지만 어쨌든 즐겁다. 골프는 4인 1조여서 필드를 함께 뛸 '메이트'를 늘 찾는다. 특히 '골린이'(골프 초보자)는 먼저 메이트 선정 대상이 될 수 없으니 주변에 더 많이 알려야 끼워 넣어 주기라도 한다. 골프를 시작했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답변이 있다. '머리 언제 올렸냐'는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무척 당황했다. 골프채를 휘두른 뒤 공이 날아가는 걸 보기 위해 머리를 들어 올렸는가의 의미는 아닌 듯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머리(를) 올리다'라는 표현을 '어린 기생이 정식으로 기생이 되어 머리를 쪽 찌다' '여자가 시집가다' 등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정의하고 있다. 어린 기생은 첫 손님을 맞이해야 정식 기생이 되는데 해당 표현은 여성에 대한 성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골프 용어로 쓰이는 '머리 올리기'는 첫 필드 라운딩을 말한다. 굳이 성적 의미를 담지 않아도 이해 가능한 표현을 관례 용어라며 당위성을 강조해서 사용하는 이들을 대할 때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이들이다. 성 인지 감수성은 양성평등 시각에서 일상생활에서 성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하는 민감성을 뜻한다.

최근 서울우유 유튜브 영상광고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영상광고에서 카메라를 든 남성은 산속을 배회하다 흰옷을 입은 여성을 발견하고 몰래 다가가 촬영을 시도한다. 남성이 실수로 나뭇가지를 밟자 목초지에서 요가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젖소로 바뀐다.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비난이 쏟아졌다. 여성을 젖소로 비유하고 남성이 몰래 촬영을 시도한 데 대한 비난이다. 논란이 일자 서울우유는 9일이 지나서야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서울우유가 내놓은 최초의 변은 “영상 속 8명 가운데 2명만이 여성이며 청정 자연이나 친환경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여성혐오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을 클로즈업한 장면 때문에 영상 속 인물들이 모두 여성으로 비춰졌지만 성차별을 한 것은 아니다'란 의미로 해석된다. 성 인지 감수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성별이든 종교, 지역, 빈부 등 모든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인지'하는 데서 시작한다. 감정적인 의미를 담은 '감수성'이란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차별을 인지하는 민감한 정도를 말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남성이 몰래 촬영하는 사람이 젖소였고 해당 인물이 여성으로 보인다는 데서 출발한다면 서울우유 광고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실제 영상 속 인물 가운데 여성이 몇 명인지에 따라 성차별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별'을 알지 못했다는 식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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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