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지원금을 위해 만든 인터넷 신청시스템이 기능 부실로 제대로 이용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결국 시청에서 종이신청서를 작성해서 주민에게 송부하고 주민이 기재사항 확인 후 서명·날인해서 시청에 반송하면 공무원이 기재사항, 시청이 보유한 주민 정보와 대조 확인 작업을 거쳤다. 코로나19 확진자도 각 지역 거점 보건소에서 종이 문서에 기입해 관련 부처에 팩스로 통보, 집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디지털 시대에 팩스로 집계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더욱이 집계 과정에서 오기 등으로 통계가 틀리거나 실시간 집계가 되지 않아 코로나19 대책 수립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 난맥상이 드러났다. 급기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일본의 디지털 패전을 선언하고 디지털화를 추진하겠다며 내각부 직속기관으로 정원 500여명 규모의 디지털청을 신설하고 올해 9월에 설립, 일본의 전자정부 총사령탑으로 출범하게 됐다.

필자는 지난해 말부터 일본의 정보기술(IT) 관련 부처 최고책임자 및 자유민주당으로부터 디지털청 설립에 관한 조언을 요청받아 관료와 자민당 국회의원 대상으로 한국의 국가정보화 추진체계 및 관련 부처 업무 내용과 전자정부 선진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 국회에서 개최한 전자정부 세미나에서 자민당의 중의원, 참의원 등 국회의원들에게 한국 국가정보화 사례를 하나하나 소개할 때마다 한국의 전자정부 서비스 발전상에 대해 놀랍다는 이야기와 선진 사례를 처음 들어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여러 질문과 소감 발표가 있었지만 인상이 가장 깊은 것은 이제까지 일본은 북유럽의 전자정부 선진국 에스토니아를 배워야 한다고 들었지만 정작 일본이 벤치마킹해야 할 모범 사례는 에스토니아가 아니라 이웃나라 대한민국임을 확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쿄도 IT 분야 최고책임자의 요청으로 도쿄도 교육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인터넷 수능방송 및 교육행정정보시스템, e학습터 등 한국 교육정보화에 대해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자치단체별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도입, 중복투자로 인한 세금 낭비가 심하다. 각기 다른 회사가 개발한 시스템을 사용해서 시스템 연계에 어려움을 겪고 교육 기회 평등을 위한 인터넷 수능방송, e학습터 같은 서비스는 일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일본 사회 정보화는 낙후돼 우리나라의 200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한민국 행정, 의료, 교육, 금융 등 공공 분야의 각종 제도와 정보시스템은 일본 영향을 받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유사성이 높아 서로에게 참고가 된다. 2000년 이후 유엔 전자정부 랭킹에 늘 상위권에 있는 우리나라는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반드시 참고할 사례다.

실상은 그렇지만 얼어붙은 한·일 관계로 일본 정부나 기업이 한국 정부 또는 기업 등에 도움을 청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정권에서 차관을 지낸 인사는 필자에게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 선진 사례가 일본에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많은 일본인이 충분히 인지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일본의 주요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만큼은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해 왔다.

일본에는 '나가이 모노니 마카레루'(長いものに卷かれる)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한다면 대세에 편승하라는 이야기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을 관찰해 온 필자의 생각에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꾸준히 대한민국 IT 선진성을 알리다 보면 머지않아 한류 IT도 일본에서 환영받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이사 yomutaku@e-corporation.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