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크]두번 태어나는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수요 증가로 전기차의 다 쓴 중고·폐배터리를 활용한 배터리 재사용(Reuse)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 NEF(New Energy Finance)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연 29% 수준으로 성장해 2030년 약 30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만 약 1800~2000Gwh에 달하는데, 이는 500만가구(4인 기준, 가구당 월평균 전력소비량 350㎾h) 이상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완성차 업계가 예상하는 전기차 배터리의 사용 주기는 보통 7~10년이다. 보통 전기차의 배터리는 초기 충·방전 성능 대비 70% 수준 이하면 주행거리가 감소하고, 충전 속도가 저하돼 교체가 필요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이면 연간 폐배터리 배출 물량은 약 11만개, 전체 누적 개수는 약 42만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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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2MWh급 에너지저장장치(ESS). 여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재사용했다.

가정에서 다 쓴 건전지를 분리, 배출해야 하는 것처럼 전기차용 중고·폐배터리 역시 일반 쓰레기와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이 배터리는 니켈·리튬·코발트·망간 등의 금속류와 폴리머 전해질로 구성돼 있어 일반 쓰레기처럼 매립할 경우 토양·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소각하면 폭발이나 유해가스를 방출할 수 있다.

전기차용 중고·폐배터리는 충·방전 성능 등 차량 운행 측면에선 수명이 다된 것이지만, 전기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아직 남아 있어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까지 다른 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다. 이는 배터리를 분해해 각종 금속물을 배터리 등의 소재로 재활용(Recycling)하는 것과는 달리 배터리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재사용(Reuse) 배터리라고 부른다. 재사용 배터리의 대표 사례가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다. ESS는 정해진 일정한 속도로 충전에 일정한 속도로 방전하기 때문에 전기에너지를 충전한 후 사용처에 맞게 방전하는 건 전기차와 같은 원리다. 그러나 전기차처럼 급격한 고출력이나 빠른 속도의 충·방전 성능이 필요 없어 배터리 성능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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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아이오닉5 배터리팩 생산 모습.

폐배터리 여러 개를 활용해 ESS 설비를 구축한 다음 전력을 저장해두면 가정·빌딩·공장 등에 안정된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또 신재생에너지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는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전기를 규칙적으로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때 ESS를 함께 활용하면 전기 공급을 안정화할 수 있고, 안정된 전력계통 운영에도 크게 도움 된다.

업계는 2019년 기준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약 1조6000억원, 2030년엔 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배터리 재사용 산업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선과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한 ESS를 만드는 재사용 사업 로드맵을 수립하고,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평가하고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향후 생산할 배터리팩 형상을 고려한 기술 개발 및 제품군 확보에 앞장서고 있다. 전기차를 만들 때부터 재사용을 고려해 배터리 모듈이나 팩, 시스템 등 설계해 반영한다.

또 현대차는 국내외 에너지 기업과 협업을 통해 친환경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며 전기차 후방산업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엔 핀란드의 바르질라(Wartsila)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수력원자력·OCI·한화큐셀 등 기업과 ESS 활용 방안에 대한 기술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여기에 ESS와 재생에너지를 연계한 실증사업도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재사용 배터리를 활용해 울산 공장에 2MWh 규모의 ESS를 설치하고, 태양광발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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