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치매 없는 시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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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인구고령화보고서는 오는 2050년께면 100세 장수가 보편화되는 '백세인'(Centenarians)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 수명이 늘어나는 건 기쁜 일이지만 장수의 본질이 수명이 아니라 삶의 질이란 점을 생각하면 준비해야 할 것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피폐해지는 치매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치매 치료제 아두카누맙(상품명 아두헬름)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FDA가 치매 관련 신약을 승인한 것은 2003년 이후 무려 18년 만이다. 효능에 대한 거센 논란 속에 임상 4상을 실시해야 하는 조건부 승인의 꼬리표가 붙었지만 일시적 증상완화제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원인치료제라는 점에서 향후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리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두카누맙이 FDA의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대상이 된 것은 치매의 주요 원인물질로 알려진 환자 뇌 속의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감소시키는 치료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아두카누맙과 또 다른 치매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는 로슈사의 간테네루맙 역시 FDA와 가속승인을 협의하고 있다. 논란이 많음에도 FDA가 새로운 치매 치료제에 대한 가속승인을 적극 검토하는 이유는 치매의 심각성 때문이다.

세계의 다수 제약사와 연구소가 치매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99%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치매 치료제 개발과 관련한 최대 난제는 진단 시기다. 치매는 대부분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단계에서 진단되는데 이때는 이미 중증 상태로, 기존 치료제로는 진행을 돌이키기가 어렵다. 치매 원인물질은 인지기능 장애가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뇌 속에 쌓이기 시작한다. 원인물질이 축적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완치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최근에는 치료제 후보물질의 임상을 무증상 환자와 유증상 환자로 나눠 설계하는 방식으로 초기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4년 후인 2025년에 고령자 1000만명 이상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전망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세금 납부자는 줄고 고령인구에 대한 공적 비용은 급증하는 사회적 불균형이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의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국내 치매 환자가 2024년 100만명, 2039년 2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치매를 국가적 과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는 당면한 치매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 2015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중심으로 전문가를 집결시킨 치매 DTC 융합연구단을 출범시켰다. 초기에는 6년이란 짧은 기간에 국가적 요구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주목할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가상현실(VR) 드라마를 보면서 치매를 조기 예측하는 기술과 치매환자 간병보조용 로봇 '마이봄'이 탄생했고, 임상으로 이어질 만한 유력한 치료제 후보물질도 여럿 도출됐다.

21일은 '치매 극복의 날'이었다. 아두카누맙의 성공이나 치매DTC 융합연구단의 연구개발(R&D) 사례에도 치매 정복은 아직 요원한 꿈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투자와 관심,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인류가 꿈꾸는 치매 없고 건강한 백세 시대의 귀중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배애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치매 DTC융합연구단장 anpae@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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